영화 '치이카와'가 77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청년층의 현실 공감 서사와 K팝식 굿즈 마케팅이 맞물리며 극장가와 유통가에 '오픈런·노숙 대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애니메이션 영화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 스틸컷./사진=CJ ENM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이하 '치이카와')이 한국 영화 대작들을 누르고 국내 극장가를 점령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일 기준 '치이카와'는 누적 관객 수 77만명을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상위권 및 11일 연속 전체 예매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 첫날 12만2291명의 관객을 동원해 '부활남: 더 레드' '암살자(들)', '타짜: 벨제붑의 노래' 등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이후 줄곧 거침없는 흥행세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이 같은 신드롬은 이미 원작 국가인 일본에서 예견됐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해당 작품은 누적 관객 1133만명, 흥행 수입 약 168억엔(약 1423억원)을 돌파하며 올해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5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치이카와'는 국내에서 '먼가(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줄임말인 '먼작귀'라는 명칭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2020년부터 X(엑스·옛 트위터)에 연재한 만화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이번 작품을 통해 첫 번째 극장판으로 탄생했다.

잘 울지만 용감한 햄스터 치이카와, 고양이를 닮은 가르마(하치와레), 엉뚱한 토끼(우사기) 등 1.5등신의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이번 극장판은 보수 100배와 한정판 음식을 준다는 말에 찾아간 인어섬에서 정체불명의 존재 세이렌과 마주하며 죄책감과 상실이라는 묵직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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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주목, 노동과 생존 서사가 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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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청년층의 고단함을 대변한 '치이카와'가 77만 관객을 모은 가운데, 밤샘 노숙 대기부터 K팝식 마케팅까지 결합하며 유통·극장가를 흔드는 거대 팬덤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용산점 리빙파크에 위치한 '치이카와샵' 앞에 굿즈를 구매하려는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사진=스레드 캡쳐


주요 외신들은 이 작품이 단순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넘어 2030 청년층을 사로잡은 배경에 주목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등장인물들이 풀 뽑기나 스티커 붙이기, 괴물 토벌 같은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자격증 시험에 낙방하는 모습은 '불안한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건당 보수를 받는 단기 임시 노동) 현실과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역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하루벌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서사가 취업난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20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외신의 분석은 실제 한국 극장가의 관객 지표와 SNS 현장 반응으로도 입증된다. CGV 예매 분석에 따르면 여성 관객 비율이 72%, 20대 예매율이 46%를 차지하며 청년층의 지지가 압도적인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상에서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현실의 나처럼 고단하게 일하고 버텨내는 모습에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며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고 굿즈를 구매한다는 청년층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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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노숙 대란부터 K팝식 마케팅까지…팬덤 경제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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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팬덤의 화력은 팝업스토어 노숙 대란과 극장가 오픈런이라는 유례없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굿즈 소비와 숏폼 콘텐츠 생산에 익숙한 20대 여성 관객층이 극장과 유통가로 대거 유입된 결과다.

실제로 지난 7일 서울 용산 치이카와 상설 매장 앞에는 굿즈를 사기 위해 전날 밤부터 돗자리를 깔고 밤샘 대기한 인파가 길게 늘어섰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자정에 왔는데도 380번대다", "아침 첫차를 타고 왔는데 700번대 대기번호를 받았다"며 역대급 대기 행렬에 혀를 내두르는 글이 잇따랐다. 새벽 대기 인파가 몰려 혼잡해지자 민원 접수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극장가 역시 8종 랜덤 피규어 특전 회차가 연일 매진되고, CGV 캐릭터 팝콘통이 조기 소진돼 중고 시장에서 원가의 2~3배가 넘는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특히 국내 배급사인 CJ ENM이 캐릭터들을 Mnet '엠카운트다운'과 '릴레이 댄스'에 출격시키는 등 아이돌식 프로모션을 전격 도입한 점도 한몫했다. 캐릭터 IP와 K팝식 프로모션이 결합한 팬덤 경제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