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을 위한 인권 개선 움직임이 수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그간 지적돼온 과도한 송출·입 비용 해결을 위해 인도네시아와 어선원 고용·노동 부문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8개월째 이에 대한 후속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MOU의 핵심은 그간 민간이 담당해온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할 외국인 선원 도입 및 관리 업무를 공공기관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백지화된 탓에 외국인 어선원 인권 보호를 위한 작업에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정부가 최근 외국인 어선원의 최저임금을 한국인 선원 기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처우 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고 있으나 불합리한 모집·관리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혜택이 오롯이 돌아가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원 이주노동자는 어느덧 우리 바다를 지키는 핵심 자원이 됐다. 2021년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어선·상선 포함)은 2만6775명으로, 전체 선원의 44%에 달한다. 이 같은 비율은 장시간·고강도 업무가 필요한 선박일수록 높아진다. 특히 고기잡이의 경우 외국인 선원에 의해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바다로 나가는 원양어선은 76%,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20톤 이상의 어선의 경우엔 42%가 이주노동자다.
중요도가 커지는 데 비해 처우 개선 속도는 더디다. 외국인 선원이 한국에 올 때 발급받는 비자는 'E-9', 'E-10' 크게 두 가지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려면 E-10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가 주무 부처지만 실제 운영은 선박소유자(선주) 단체인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중앙회)가 맡는다.
수협중앙회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미얀마 등 4개국 현지 송출업체와의 계약을 맺고 선원을 데려온다. 이 과정에서 다단계 형태의 착취 구조가 생긴다. 수협중앙회가 관련 업무를 국내 송입(관리)업체에 재위탁한 결과다. 이에 따라 과도한 송출비용에 각종 사후 관리비가 더해진다. 관리비 문제가 불거지자 송입업체들이 송출비용에 이를 포함시키는 악순환도 벌어진다.
인권단체들은 송출·입 과정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이에 발맞춰 해수부도 지난해 3월 선원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한국수산어촌공단법'을 입법 예고했다.(관련 기사:1000만원 내고 온 베트남 선원…15시간 노동·저임금에 쓰러진다)
공공성을 갖춘 수산어촌공단을 신설, 외국인 어선원 인력 수급과 고용 관리 업무를 맡기려 한 것이다. 사용자단체인 수협중앙회가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협중앙회의 반발이 있었지만 해수부가 같은 해 5월 인도네시아와 정부 주도의 어선원 도입을 위한 MOU를 맺으면서 이들의 인권 개선 작업에도 속도가 붙는 듯 보였다. 그러나 송출 및 도입기관 지정, 송출비 현실화 등 선원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환경 개선을 위한 후속 논의는 잠잠하다.
지난해 8월 수산어촌공단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어선원 관리업무'가 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선 해수부의 계획은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부딪혔고, 관련 업무는 여전히 민간업체의 몫으로 남았다.
MOU 당시 해수부는 지정 기관에서 선원 선발과 교육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과도한 송출비용을 줄이는 등 외국인 어선원 도입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지만, 힘이 빠진 모양새다. 두 달 뒤면 MOU를 맺은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송출·입 업무를 담당할 주체가 바뀌지 않으니 속도가 날리도 만무하다.
해수부의 입장은 다르다. MOU 후속 논의가 지연되는 것은 인도네시아 측의 피드백이 제 때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협상에 따라 정부 주도의 선원 도입도 재논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측이 외국인 어선원 모집 주체를 정부 및 공공기관으로 격상해달라고 요구하면 우리 역시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단서를 달았지만 MOU의 취지 자체를 감안하면 외국인 어선원 모집 업무의 공공기관 이전은 결국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해수부는 2020년부터 이주 어선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 개선책을 내걸었는데, 이 중 첫 번째가 송출체계 개선이었다.
하지만 진통이 예상된다. 정작 수협중앙회와 송입업체는 해수부가 관련 계획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수부가 또다시 선원 송출·입 업무를 공공기관으로 넘기려 한다면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앞서 수협중앙회는 '전문성 부족'을 반대 근거로 내세웠다. 관리 주체 변경으로 인한 혼란은 물론 공단 특유의 경직된 시스템으로는 현장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민간이 공들여 확보한 시장에 해수부가 산하기관을 내세워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등 다소 격한 대응도 펼쳤다.
업계 눈치까지 봐야 하는 해수부는 다소 모호한 태도다. 앞선 관계자는 "선원 도입 업무를 담당하던 민간업체를 완전히 배제하면 생존권 문제가 생긴다"며 정부 주도의 선원 도입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일단 수협중앙회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인도네시아 측과 협상에 따라 관련 업무를 공공기관으로 넘기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해수부는 이주 어선원 송출·입 업무를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등 관련성이 높은 다른 공공기관에 맡기는 안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정부는 공공성이 확보된 외국인 선원 도입 모델을 구축한 후 베트남 등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인데, 지금과 같은 민간 중심 체계가 이어진다면 외국인 선원의 처우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크다.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소속인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오세용 소장은 "외국인 어선원을 모집하는 과정이 민간 중심의 다단계 위탁 구조로 돼 있다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며 "선원 이주노동자의 인권 개선 출발점은 공공성 강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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