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자체 브랜드(PB)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채널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무신사의 뷰티 PB 제품인 오드타입 틴트. /사진=무신사


유통업계가 자체 브랜드(PB)를 키우면서 회사 이름을 감추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유통 기업 이름과 색깔을 내세워 신뢰와 가성비를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어느 회사가 만든 상품인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독립 브랜드를 앞세운다. 자사 매장의 가성비 상품이던 PB를 외부 유통망과 해외에서도 팔리는 브랜드 자산으로 키우려는 전략이다.

올해 유통 업계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무신사 오드타입, CJ올리브영 바이오힐 보, 컬리 듀에라 등 최근 유통사가 직접 기획·육성하는 브랜드는 이름만으로 어느 회사의 PB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로고와 패키지도 일반 제조사 브랜드(NB)처럼 독자적인 정체성을 내세운다.



이는 기존 PB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마트 노브랜드, 홈플러스 시그니처, 세븐일레븐 세븐셀렉트 등은 유통사 이름을 직접 쓰거나 로고와 브랜드 색깔을 연결해 출신을 강조했다. PB는 유통사가 쌓은 신뢰를 상품에 이식하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소비자를 자사 매장에 묶어두는 역할이 컸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상품군에 따라 전략이 갈린다. 컬리는 PB 컬리스에 회사 이름을 그대로 썼지만 지난달 출시한 뷰티 브랜드 듀에라에서는 컬리라는 이름을 뺐다. 컬리 관계자는 "듀에라를 컬리가 연상되지 않는 이름으로 지은 것도 전략"이라며 "기존 시장의 틈새를 공략해 컬리만의 영역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 브랜드는 자사 유통망 밖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무신사는 오드타입 등 자체 브랜드의 국내외 유통채널을 다각화하며 리테일러를 넘어 브랜드 사업자로 역할을 확대했다. 오드타입은 일본 로프트·프라자·앳코스메 등에 진출한 데 이어 미국 미군 유통채널과 쿠웨이트 쇼핑몰에 입점했다. 호주에서도 현지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올리브영도 자체 브랜드의 외부 유통망을 키우고 있다. 바이오힐 보·브링그린·컬러그램은 올해 2월 폴란드 화장품 유통기업 가보나와 손잡고 유럽 오프라인 시장 진출에 나섰다. 폴란드를 시작으로 다른 유럽 국가로 판매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유통채널에서 키운 PB가 독립된 이름을 달고 해외 유통망으로 나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PB가 유통사에 종속된 상품에서 독립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기업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면 해당 유통채널에 종속된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외부 채널이나 해외 시장까지 확장하려면 독립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유통사가 상품을 파는 단계에서 브랜드를 만들어 파는 단계로 사업 모델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PB의 역할이 달라지는 배경에는 국내 유통시장의 성장 한계도 있다. 점포 확대를 통한 양적 성장이 어려워지면서 기존 점포의 매출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자체 브랜드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PB 시장이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단계에서 전략적 브랜드 확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NB와 직접 경쟁할 정도의 상품력을 갖추고 독립적인 이름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로 육성하는 것이 PB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유통시장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내수 소비도 정체되면서 차별화된 PB로 매출을 높이는 동시에 해외로 시장을 넓힐 필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