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잠시 망설였다. 보고 나면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글에 선입견이 개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다고 관람도 않고서 첨예한 논란을 다루자니 그것도 이상했다. 결국 영화를 봤다. 세간의 논쟁에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됐는지 감상기는 풀어놓지 않으려 한다. 이미 내용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선 백가쟁명식 의견이 쏟아진다. 다만 보기 전과 본 뒤, 생각은 적잖이 달라졌다.
영화 비평을 넘어 나 스스로 주목한 건 관람을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선입견 우려 말고도, 개인의 선택에 정치적 의미가 따라붙는 듯한 불편함이 있었다. 정치권을 필두로 영화를 보면 감독 편, 외면하면 역사왜곡 비판 쪽에 서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탓일까. 일종의 '정체성 검열'처럼 다가왔다. 영화 한 편을 선택할지 말지에도 '넌 누구 편이냐'는 질문지를 받아든 셈이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배재고 야구부 사건 때도 사회적 논쟁이 '정치의 과잉화'로 번지는 장면이 있었다. 일부 선수들이 응원 중 5·18을 조롱했다는 논란이 발단이었다. 학교가 잘못을 인정했고, 학생들도 광주를 찾아 직접 사과했다. 그러나 학생들 잘못과 적정한 처벌을 따질 사안에 정치권이 적극 가세하면서 교육과 징계를 넘어 이념 대결로 번졌다. 물론 암살자(들)과 배재고 사건은 성격과 맥락이 전혀 다른 사안이다. 같은 저울에 올려 비교할 수도 없다. 닮은 건 사건이 아니라 정치가 논쟁에 뛰어드는 방식이다.
논쟁적 사안에 '정치'가 가세할 때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진다. 더 강한 발언으로 존재감과 선명성을 드러내려 한다. 배재고 사건 당시 여당 의원은 야구부 해체까지 거론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사과하고 선처를 얘기하는데 정치권 언어는 오히려 더 세졌다. 암살자(들)을 놓고선 야당 대표의 불매 제안에 이어 상영 중단 요구까지 제기됐다. 정당을 가릴 것도 없다. 배재고 때는 여권에서, 암살자(들) 때는 야권에서 확성기를 든 셈이다. 사실 관계와 해결 방법을 충분히 따져보기도 전에 '자신의 답'부터 내놓고, 여기에 진영의 언어를 입혀 어느 편인지 묻는다.
'누구 편인가'. 이 질문이 앞서기 시작하면 결과는 뻔하다. 진영의 시각에서 답을 제시하면 시민이 따져볼 몫은 줄어든다. 미국 스탠퍼드대 숙의 민주주의 연구소의 제임스 피시킨 교수는 경쟁 민주주의에서 정당들이 시민의 숙의보다 선거 승리를 앞세우려 한다고 꼬집었다. 시민은 정보를 충분히 살필 여유가 없어 뉴스 헤드라인과 당파성에 기대 판단하기 쉽다. 암살자(들) 논쟁도 비슷하다.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 영화적 상상인지 제대로 따지기도 전에 불매와 창작 자유론의 대결로 번졌다.
충분한 정보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피시킨 교수 연구팀은 2019년 미국 유권자 520여 명을 모아 나흘간 '이민·의료·경제·환경·외교정책' 등 민감한 현안을 논의하게 했다. 균형 잡힌 찬반 자료를 읽고, 서로 다른 입장의 전문가들과 토론하자 좌우의 강경한 정책은 대체로 지지를 잃고, 여러 중도적 정책이 지지를 얻었다. 균형잡힌 정보와 반론을 거친 숙의가 애초의 판단을 바꿀 수 있음을 실증으로 보여준 셈이다.
물론 '정치인은 빠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도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답을 먼저 정하듯 하지 말고, 소모전을 증폭시키지 말라는 얘기다. 배재고라면 학생들의 잘못을 분명히 짚되, 어떤 징계가 교육적으로 적절한지 당사자와 학교·체육계의 판단을 충분히 들어볼 일이다. 암살자(들)이라면 유족이 제기하는 역사왜곡 주장과 고인의 명예훼손 우려를 충분히 듣되,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영화적 상상인지 철저히 따져볼 일이다. 쟁점은 다투되 시민의 선택까지 재단하지 않는 것, 그게 정치가 지켜야 할 선이다.
문제는 정치의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남보다 먼저, 같은 편보다 세게 말해야 주도권을 잡는다고 여긴다. 반면 숙의의 시간은 느리다. 당사자의 말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고, 반대편 논거까지 살피려면 기다려야 한다. 역사 논쟁과 표현의 자유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일수록 더 그렇다. 정치가 느린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논쟁에 던져진 질문은 금세 진영의 답으로 돌아온다. 그런 답이 정해지는 순간 반대 의견은 단순히 다른 주장이 아니라 '저쪽 편'의 주장이 된다. 학생들 징계 수위를 판단하는 일도, 영화를 볼지 말지 선택하는 것도 어느새 '누구 편인가'를 드러내는 행위처럼 비친다. 정치가 할 일은 빨리 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답을 찾을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다. 정치는 확성기가 아니라 숙의 마중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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