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이 번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SK하이닉스는 여의도 면적의 약 1.4배인 416만5000㎡ 부지에 60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공장(팹) 4기를 짓는다. 첫 팹 Y1의 클린룸은 2027년 2월 문을 열고, 2033년까지 팹 4기가 모두 완공될 예정이다./조현호 기자


산자락 길을 몇 차례 돌자 거대한 공사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광봉을 든 신호수 손짓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40톤급 덤프트럭이 육중한 바퀴를 굴리며 쉴 새 없이 오갔다. 굴착기는 땅속 깊이 버킷을 꽂아 연신 흙을 퍼 올렸다. 수십 대의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는 공사장에는 안전모와 형광 조끼 차림의 근로자들이 K반도체의 새 터전을 다지고 있었다.

지난 7일 찾아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이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한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를 짓는 이 곳은 하루 3교대로,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낮과 밤이 이어진 작업에도 근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현장의 40대 근로자 이모 씨는 "야간 조 근무 때는 밤낮이 바뀌어 힘든 면이 있지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땅 파기 작업에 한창이던 50대 굴착기 기사 김모 씨는 "여러 공사 현장을 다녔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본다. 나중에 손자에게 세계 최고 반도체 공장의 터를 할아버지가 닦았다고 말해주려고 한다. 좀 주제 넘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역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이들의 말에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용인시에 60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공장(팹) 4기를 짓는다. 부지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1.4배인 416만5000㎡다. 팹이 들어설 땅만 축구장 270여 개 넓이다. 반도체를 만드는 무균실인 클린룸이 처음 계획보다 50% 이상 넓어지면서 공사 규모가 커졌다. 팹 1기 규모는 한 달에 반도체 원판(웨이퍼) 약 10만 장을 찍어내는 '청주 M15X' 팹의 여섯 기와 맞먹는다. 당초 2045년이던 전체 팹 완공 목표가 12년 앞당겨진 2033년으로 바뀌면서 공사 현장이 더욱 바빠졌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31조원이 들어가는 첫 팹 Y1에 이어 35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둘째 팹 Y2도 내년 7월 착공해 2029년 6월 클린룸을 연다. Y2 가동에 필요한 1단계 전력·용수 시설은 공정률 99%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7년 뒤 팹 4기가 모두 완공되면 한국은 세계 AI 메모리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생산 기반을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팹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모습./조현호 기자


이곳과 주변에는 소재·부품·장비 기업 50여 곳이 들어설 협력 단지와 양산 검증 시설, 물류·특수가스·폐수 재이용 시설까지 생긴다. 생산부터 검증, 자원 재활용을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게 SK하이닉스의 구상이다. 완성되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 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 할퀴고 간 대한민국 땅에는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뿐이었다. 그들이 땀과 의지로 길을 열었다. 1960년대에 섬유와 합판 등을 수출하며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1970년대에는 철강·조선 등 중화학공업을 키웠다. 그리고 반도체에 과감히 투자해 선진국을 추격한 끝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

AI가 발전할수록 데이터를 끊임없이 공급할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가 필수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62.8% 늘어난 603억달러로 사상 처음 600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전체 수출의 절반을 책임졌다.

60여 년 전 맨손으로 수출길을 개척했던 한국은 이제 세계 AI 산업의 기반을 책임지는 나라로 도약하고 있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용인이 있다. 하늘을 가르는 크레인, 내일의 땅을 다지는 굴착기, 꼬리를 문 덤프트럭 행렬,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근로자들의 발걸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때 마침 대형 크레인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2027년 2월, 용인 클러스터 첫째 팹 Y1의 클린룸이 문을 연다. 그날까지 남은 시간은 넉 달 안팎, 원삼면에선 오늘 밤에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줄 역사가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