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나라를 파탄에 빠뜨린 이 지도자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합법적 절차를 거친 민주적 투표로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왜 스스로 나라를 망가뜨릴 지도자를 뽑는 일을 되풀이하는가.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신간 '권력본색'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강점은 세 가지다. 먼저 정치부장 등을 거친 25년차 기자가 직접 발로 뛰며 보고 들은 1차 취재 기록이라는 점이다. 서두에서는 저자가 검찰 출입기자 시절 직접 취재원으로 마주했던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모습 등을 통해 지도자에 대한 통찰을 끌어낸다.
두 번째는 플라톤과 도스토예프스키부터 영화와 넷플릭스 드라마까지 넘나드는 폭넓은 인용이다. 각 장마다 정치 현장 이야기와 동서고금의 역사, 고전 등에서 끌어온 내용이 가득 차 있다. 미국 부촌의 밤길이 오히려 더 어두운 이유는 뭘까. 경제학자들은 왜 길에 떨어진 지폐를 줍지 않을까. 지금보다 조선시대가 더 추웠던 이유는?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읽기 편하게 짧게 짧게 나눠진 구성도 가독성을 높인다. 총 6부 50장으로 짜여져 있다.
이 책의 1부는 대통령이라는 존재를 해부한다. 대선은 대중의 욕망이 더 강한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저자는 김대중 정부부터 이재명 정부까지를 욕망의 연쇄로 읽어낸다. 누군가를 응징하고 싶다는 파괴적 욕망만으로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러야 한다.
분노가 선택을 지배할 때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대통령이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히면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책은 현실과 역사 양쪽에서 살펴본다. 대중의 분노가 낳은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발동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부는 비정한 국제정치의 민낯을 다룬다. 권력은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 정치에서도 작동한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걸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걸 당한다." 기원전 아테네가 멜로스에 던진 이 말은 오늘날 한반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약 120년 전 미국은 조선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3부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집중 분석한다. 저자는 스승인 로이 콘 변호사가 물려준 '승리의 법칙'을 통해 트럼프의 협상술을 풀어낸다. 트럼프의 충동적 언행을 백악관 부비서실장 출신 케이티 월시가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설명한 대목에선 권력자의 내면까지 파고든다.
그를 그저 '이상한 대통령'으로 치부하는 건 위험한 오판이라는 경고도 뒤따른다. 트럼프는 미국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백인 노동자의 분노와 공포를 먹고 자랐다. 그의 세계관과 협상술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트럼프는 시작일 뿐이다.
4부는 위기의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의 핵 버튼,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 주한미군 철수 위협까지. 수많은 위험이 한반도를 짓누른다. 단 한 번의 실수가 국가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책은 백척간두에 선 한반도의 활로를 모색한다.
5부는 돈의 법칙을 다룬다. AI(인공지능)가 불러올 일자리 빙하기, 대영제국의 몰락, 아르헨티나의 비극, 독일과 프랑스의 엇갈린 에너지 정책과 그 결과까지. 권력의 기반이 되는 경제 이슈에서 지혜를 길어 올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마지막 6부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이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를 처벌하면 결국 달콤한 거짓말만 남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한다. 셰익스피어가 '리어왕' 등 4대 비극에서 그토록 강조한 메시지다.
"인간은 어리석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다. 역사는 배우지 않는 자에게 더 가혹한 문제를 들고 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음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누구를 뽑지 말아야 할지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 이상배는 25년간 청와대와 국회, 검찰, 재정경제부, 뉴욕 월가를 오가며 권력의 심장부를 지켜본 현직 언론인이다. 머니투데이에서 검찰팀장과 뉴욕특파원, 경제부장, 정치부장을 차례로 지내며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대선 취재를 지휘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도 출입했다. 현재 동행미디어 시대의 정경부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과 정희용 국민의힘 사무총장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추천사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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