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성취다. 그러나 그 이면의 현실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매사에 사활을 거는 비타협의 정치, 편향과 극단이 지배하는 갈등 구조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다양한 이해와 가치의 충돌은 민주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사실과 논리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리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해법을 찾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공화'의 가치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원지가 된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정치적 유인, 상대를 악마화하는 강성 지지층의 극단주의가 맞물린 결과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게임 규칙도, 명분도, 승복도 없는 권력 싸움은 사생결단식 이전투구와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편향과 극단의 폐해가 갈등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허물고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국가의 문제 해결 능력마저 떨어뜨린다. 결국 편향과 극단의 극복은 단순히 퇴행적 정치문화를 개선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과 미래의 번영을 좌우할 사회적 성숙도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한 단계 도약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과 인공지능(AI) 혁명은 한국 경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K팝 등 문화적 역량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반면 경제적 이해의 충돌과 구조적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 전반에 불안과 냉소를 확산시키고 있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노력과 성취가 과연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와 복지, 교육과 국방에 이르기까지 국가 운영의 기본 전제를 바꾸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더 높은 수준의 번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1인당 GDP 4만 달러의 문턱에 다가서고 있지만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다. 정체는 곧 퇴보이자 도태다. 5만, 6만, 7만 달러 시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7만 달러는 단순한 소득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가의 수준, 사회의 수준을 상징한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번영은 경제의 숫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해의 충돌을 조정하고,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미래의 이익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부를 창출하는 능력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사이의 간극.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선진국의 역설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경제적 성취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역량의 부재가 더 큰 도약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물이다.
결국 정치의 작동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죽은 정치의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각한 정치의 기능 부전 상태에 처해 있다. 갈등의 조정과 공동체의 이익 실현이라는 정치의 목적과 본령을 되새겨야 할 때다. 정치도, 시민사회도 진영의 도그마를 깨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숙의'의 문화와 제도가 뿌리내려야 한다.
숙의는 단순히 오래 토론하거나 서로의 주장을 적당히 절충하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정보와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서로의 견해를 검증하고, 이견을 좁혀 공동의 판단에 이르는 과정이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소수의 반대로 모든 것을 멈춰 세우는 방식으로는 국가적 난제를 풀 수 없다. 숙의는 결정을 미루는 절차가 아니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시민적 절제',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더라도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지적 정직성'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균형과 품격을 갖춘 성숙한 시민문화로 이어져야 한다. 균형은 기계적으로 양쪽의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니다.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사실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는 자세다. 품격은 비판할 것은 분명히 비판하되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한계에 대한 겸허함을 잃지 않는 태도다. 숙의가 제도로 뿌리내리려면 이를 떠받칠 시민적 토양도 성숙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오늘부터 종합일간지를 펴내는 동행미디어 시대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 역시 숱한 국가적 난제들에 대해 자신 있게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시대의 변화를 빠짐없이 읽어낼 수 있다는 오만도 경계한다. 다만 어느 진영이나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거나 대변하기보다 그 주장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자 한다. 익숙한 통념에 질문을 던지고, 당장의 논쟁을 넘어 변화의 본질에 천착하려 한다.
숙의 미디어를 지향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겠다는 다짐이다. 우리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을 것이다. 늘 긴장의 경계선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절제된 비판과 공감의 언어로 시대의 모토인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을 써 내려가려 한다.
이제 자랑스럽게 이뤄온 경제적 성취를 사회의 성숙과 국가의 품격으로 이어가야 할 때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갈등을 넘어설 힘과 지혜를 갖춘 사회다.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하면서도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 원칙을 지키면서도 타협할 줄 아는 사회다. 공화의 가치를 되살리고 숙의를 통해 갈등을 공동의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바꿔가는 균형과 품격의 대한민국이다. 우리 시대는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는 언론으로서 그 길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한다. 정치가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숙의가 그 길을 여는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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