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7년까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겠다는 국정 목표를 내걸었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원책 없이 적용을 서두르면 영세 사업장의 부담이 커져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는 개정안 6건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2024년 8월 첫 발의 이후 6건 모두 상임위원회에 상정됐지만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해고 제한과 가산수당, 연차휴가, 공휴일 유급휴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어떤 조항을 적용할지는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항에 따라 시행령으로 정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5인 미만 사업체의 임금노동자는 390만3000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7.4%에 이른다.
계류 법안 중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안은 모든 조항을 한꺼번에 적용하도록 했다. 박홍배·박해철·김태선 민주당 의원안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할 조항과 적용 시기를 정부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안은 해고 제한·괴롭힘 금지 등은 공포 3개월 뒤, 비용이 드는 연차휴가·공휴일·가산수당 등은 1년 뒤부터 적용하도록 시차를 법에 명시했다.
정부는 단계적 적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해 8월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모성보호 조항을 시작으로 2027년 상반기에는 연차휴가·공휴일 관련 조항까지 확대해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영세 사업주의 부담이 커질 우려도 함께 살펴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규정들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우선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 8월 하반기 업무보고에서도 9월부터 단계적 적용 확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첫 단계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의 적용을 위한 시행령 개정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와 관계 부처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국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확대되는 규정을 모두 준수할 여력이 되지 않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법률을 위반하게 되어 벌칙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해 적용 범위와 시기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지난해 7월 "영세 사업장에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쟁점은 비용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연장근로 가산수당만 적용해도 연간 약 1조3538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고용노동부의 의뢰로 작성돼 지난해 6월 발간된 보고서다. 보고서가 조사한 서울·대전의 음식점·숙박·소매업 사업주 41명 중 32명(78%)은 고용·임금·근로시간을 조정하거나 시간제 근로자를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고용을 조정하겠다는 응답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적용하기 어려운 조항(복수응답)으로는 해고 제한과 연차휴가가 각각 20명으로 가장 많이 꼽혔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예외는 영세 사업장의 취약한 지불 능력과 열악한 경영 현실을 고려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자 한국 경제의 실핏줄인 골목상권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부담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하고 로드맵을 제시하는 과제가 선행돼야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처럼 비용이 들지 않는 조항부터 적용하자는 노동계 요구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진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5인미만지부는 14일 출범식을 열고 해고 제한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연차휴가·공휴일 제도부터 연내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지부는 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 개정하면 된다며 정부에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노조 설립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따른다. 노동조합법에는 사업장 규모에 따른 예외가 없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다. 온라인노조는 2024년 10월 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은 초기업노조이며, 5인미만지부는 그 산하 조직이다.
지부는 27일 해고 제한과 부당해고 구제신청 관련 조항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1999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일부만 적용하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019년 결정은 부당해고를 다투던 노동자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으로, 재판관 9명 중 7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그동안 관련 입법이 추진되다 계속 좌절된 건 영세 사업주에게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매출과 이익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 곳에는 일관되게 적용하고, 어려움을 겪는 곳은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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