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사건'의 피해자 아버지 중 한명인 박건서씨(69)가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대구 달서구에 방문한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의 손을 잡고 있는 박씨. /사진=뉴스1

대표적인 국내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인 대구 '개구리소년사건'의 유가족 중 한명인 박건서씨(69)가 별세했다.

7일 뉴스1에 따르면 개구리소년사건 피해자들의 아버지 중 한명인 박씨가 지난 5월6일 별세했다. 사건 당시 10세였던 박찬인군의 아버지다.


그는 생전 잃어버린 찬인군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볐지만 끝내 아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20년엔 급성뇌경색이 발병해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박씨가 언론에 모습을 비친 것은 지난 2019년 9월 20일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경기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히면서 경찰은 개구리소년사건 재수사에도 의지를 보였다.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세빙골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현장을 찾았을 때였다. 박씨는 "우리 아들 죽인 범인은 경찰이 꼭 찾아줬으면 좋겠다"며 민 전 경찰청장에게 하소연 했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회장은 "생전에 아들을 찾기 위해 그렇게 애쓰시다가 돌아가셨다"며 "유골은 화장한 뒤 낙동강에 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 26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공휴일에 발생했다. 그날 한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우철원(당시 13세)·조호연(12)·김영규(11)·박찬인(10)·김종식군(9) 등 5명의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간다'며 집 뒤에 있는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 올라갔다. 하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은 국내 실종사건 중 최대규모 인원인 35만명의 수색인력을 동원했지만 범인이나 실종경위를 끝내 밝히지 못했다.

사건 발생후 11년이 지난 지난2002년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세방골에서 실종 아이들의 유골이 모두 발견되며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이 유골감정을 통해 '예리한 물건 등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이후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실종아동관련법과 범죄피해자구조법 등이 제정되는 계기가 돼 수많은 실종자를 발견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평범했던 아이들의 가정은 이 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실종 5년째인 지난 1996년 한 유명대학 교수가 "종식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고 주장하자, 경찰이 굴착기 등을 동원해 종식군의 집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무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범인으로 내몰린 종식군의 아버지 김철규씨는 화병을 얻어 2001년 10월 끝내 간암으로 숨졌다.

찬인군의 아버지 사망에 앞서 영규군의 아버지도 투병 생활 끝에 지난해 4월22일 별세했다. 이제 희생된 개구리소년들의 아버지는 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와 호연군의 아버지 조남환씨만 남아있다.

철원군의 아버지 우씨는 "아이들이 없는데 이야기할게 뭐가 있냐"며 "꿈에라도 한번 나타났으면 좋겠고, 꿈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는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런 것은 이제 없고,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지내기만을 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