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어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충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영남의 피지컬 AI 등 권역별 첨단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연 관심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 투자 계획을 조율했다. 지역 균형발전은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지만, 반도체 공장 입지는 전력과 용수, 산업 생태계, 인력 확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다. 기업이 이사회 등을 거쳐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발표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보고회에서 나오는 숫자들이 낯설 것"이라며 예상보다 훨씬 큰 투자 규모를 예고했다.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는 전체 투자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1·2위 기업이다. 쥐어짠다고 움직일 기업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관치 투자'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수년이 걸릴 입지 선정이 정부와의 협의 속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복수의 후보지를 놓고 전력·용수, 소재·부품 공급망, 인재 확보 가능성, 물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과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이 230여 개 지방정부의 제안을 받아 세제 혜택과 부지, 교통망 등을 장기간 검토한 끝에 2018년 제2 본사 부지를 결정한 사례와도 대조적이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를 선택한 것도 소니를 비롯한 기존 산업 생태계와 의료 교육 등 '정주 여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광주·전남은 상당수 기반시설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이클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이 투자계획 결정에 충분히 고려됐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반도체 특수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10여 년간 진행될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기간 내내 이런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장담하긴 어렵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적자를 내 2023년분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투자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불황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투자를 독려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 핵심 산업의 장기 투자 입지 결정에까지 정부가 깊이 관여했다는 인상을 준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정부가 기업의 입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제와 전력, 용수, 규제 개선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기업의 치밀한 분석과 엄격한 사업성 검토에 따라 투자처가 결정돼야 하는 산업이다. K-반도체의 경쟁력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서 나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