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주요 은행에 부과할 과징금 규모를 당초 2조원 안팎에서 1조원대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이 자율배상을 상당 부분 마무리한 가운데 사후 수습 노력이 제재 수위 결정 과정에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What : 5대 은행 과징금 확정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날 KB국민·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을 대상으로 제3차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에 대해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금감원은 사전통지 단계에서 일부 영업정지를 포함한 중징계를 예고했지만 한 단계 낮은 기관경고로 조정했다.홍콩 ELS 판매와 관련한 담당 직원들에 대한 제재 수위도 조정됐다. 당초 정직 수준이 검토됐지만 감봉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과징금 규모다. 당초 금감원은 이들 은행에 총 2조원 안팎의 과징금을 사전 통지했지만 전체 규모가 1조원대로 조정됐다. 판매 규모가 가장 커 약 1조원의 과징금을 예고받았던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주요 은행들의 부담이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됐다.
이 같은 대규모 감경에는 은행들의 사후 수습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앞서 "은행의 자체 배상 등 사고 수습 노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에 따라 전체 피해자의 90% 이상과 합의를 마치고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자율배상을 완료했다.
최근 법원이 ELS 손실 관련 소송에서 "은행이 과거 20년 치 수익률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 위반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은행 측 승소 판결을 내린 점도 금감원의 제재 논리를 일부 약화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BUFFER : 충당금 적립
은행권은 이번 제재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규모의 충당금을 쌓아두며 불확실한 재무적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왔다. 충당금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이나 손실에 대비해 미리 적립해 두는 금액이다.과징금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은행들이 입을 실질적인 재무 충격은 우려했던 수준보다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찬진 금감원장 역시 과징금이 생산적 금융에 차질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가장 많은 과징금이 예고됐던 KB국민은행은 1조원대 통보액 중 약 2600억원(26%)만을 충당금으로 선반영했다. 하나은행 역시 3000억 원대 과징금 중 30% 수준인 900억원가량을 적립했다. 신한은행은 통보액의 절반 수준인 1500억원을 충당금에 할당했다. SC제일은행은 1000억원대 과징금 통지액 전액을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Impact : 영업 위축·판매 규제 강화 촉각
이번 제재심 결과로 은행권은 대규모 과징금 폭탄과 영업정지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됐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라는 목소리가 나온다.금감원이 과징금을 깎아주면서도 홍콩 ELS 사태를 두고 '대표적인 불완전판매 사례'라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향후 은행권의 고위험 상품 판매는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과징금 액수가 줄어든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다만 고위험 상품 판매나 소비자 보호에 대한 당국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만큼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이번 과징금 규모와 별개로 영업 전반의 보수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 절차를 어느 수준까지 강화할지, 내부통제 위반 책임을 어떤 범위로 정리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향후 유사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절차 강화와 내부통제 책임 범위 조정 등 제도적 논의가 뒤따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금융투자상품 판매와 관련해 '고객 수익' 관점의 성과평가(KPI)를 강조하고 있는 점도 구조적 변수다. 판매액·수수료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고객이 실제로 수익을 냈는지 여부를 영업점 평가에 반영하라는 취지로, 고객 손실이 발생하면 지점 단위 감점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어 고위험 상품에 대한 공격적 영업이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은행장 간담회에서 "상품 설계·심사 및 판매의 전 과정을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새롭게 정비하고, 이에 걸맞은 소비자보호 중심 KPI 체계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금감원도 올해부터 리스크 기반의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체계'로 전면 전환해 정기검사 시 '소비자보호 검사반'을 별도로 편성하고, '금융소비자보호실태 평가' 체계를 개편하는 등 판매 전 과정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제 홍콩 ELS 제재의 최종 결정권은 금융위원회로 넘어간다. 금융위는 이번 감경안을 토대로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와 정례회의를 거쳐 최종 제재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