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보고회'에서 앞으로 10년간 1000조가 넘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벨트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관련 기업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앞으로 AI 산업으로 국가 경제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 아래 '초격차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대상으로 역대급 '국가기획 민간투자'를 하겠다는 발표다. 모든 것이 뜻대로 진행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 속담대로 혹시 생길지도 문제점을 미리 살펴 대비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 타산지석을 살펴본다.
가장 염려되는 것이 반도체와 AI 산업 '몰입'이 불러올 부작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극단적인 의존경제'에 대한 우려다. 지금도 주식시장에선 역대급 이익을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덕분에 코스피는 훨훨 날고 코스닥은 침체에 빠져 서로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날 정도다. 삼전닉스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활력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중소·벤처기업의 실적 부진과 경기침체를 감추는 가림막 구실을 해왔다. 경제의 다양한 분야가 고루 성장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정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제 안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산유국들이 잘 보여준다. 세계적 석유 공급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출의 약 90%, 정부 재정 수입의 75% 이상, GDP의 약 40%를 에너지에서 얻고 있다. 국제 유가 변동에 국가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 '비전 2030'을 추진하는 것도 관광·금융·IT·첨단제조업 등 비석유 부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국인 카타르도 원유·천연가스가 전체 GDP의 약 27%, 총수출액의 약 86%, 정부 재정 수입의 약 80%를 차지한다. 극단적인 에너지 의존의 카타르는 수출 항로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진 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에 크게 의존해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제재를 받기 전까지 에너지 부문은 연방정부 국가재정의 절반 정도를 충당했으며, GDP의 최대 24%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60%를 넘었다. 에너지라는 단일 분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뤄진 국제 제재의 충격파 증폭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식량·에너지·생필품을 자급하지만, 석유 금수로 인한 외화 확보의 어려움으로 전쟁 수행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면서도 국가와 국민은 가난한 남미의 베네수엘라도 일부 산업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의 대표 사례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0%,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극단적인 석유 의존 경제'를 보여준다. 석유에 투자와 자원, 인력이 몰리면서 농업이나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은 서서히 몰락해갔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유가가 하락하면 국가 경제가 파탄 날 우려가 있는 취약한 구조다.
그런데도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정권은 석유경제에 취했다. 막대한 오일달러를 '차비시모(차베스주의)'로 불리는 무상 의료·교육과 보조금 등 포퓰리즘 정책에 투입했다. 포퓰리즘으로 탄탄한 지지층이 형성되자 차베스는 반대파를 국가의 적으로 돌리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사법부와 언론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임기를 계속 연장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오일머니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2013년 차베스를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은 정치적 이유에서 무상복지나 국가재정 씀씀이를 줄일 수 없었다. 대신 화폐 발행을 늘렸다. 이는 2018년 170만%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불러 사실상의 국가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최근 강진이 강타한 베네수엘라의 구조작업과 사태 수습이 원만하지 않았던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반면에 모범 사례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세계적인 산유국이지만 경제에서 석유·에너지 의존도를 전략적으로 줄이면서 금융·무역·금융·부동산·건설업 등으로 산업을 다각화해왔다. 그 결과 UAE 연방경쟁통계청(FCSC)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전체 GDP에서 비석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78%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별 비율을 살펴보면 도소매·무역(16.9%), 금융·보험(13.2%), 건설(12.9%), 제조업(12.8%)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수도 아부다비의 해안에는 걸프 산유국에서 보기 힘든 거대 수리 조선소와 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 사디야트 섬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최초 해외 분관인 '아부다비 루브르'가 들어서 중동의 관광·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UAE는 한국과 원전은 물론 SMR·반도체·배터리·방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바란다.
노르웨이는 GDP의 약 50%와 총수출액의 70% 이상을 석유·천연가스 산업에 의존하는 자원 부국이다. 하지만 에너지 수출로 얻는 수익을 당장 재정에 활용하지 않고 '글로벌연금기금(국부펀드)'에 투입해 전 세계 주요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전액 저축하는 셈이다. 경기변동 등으로 유가가 변해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 구조다. 한국에서도 즐기는 고등어와 연어를 잡는 어업과 임업·제지산업·조선업·해운업·금속산업·화학산업·관광업 등 전통 경제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석유·천연가스는 대부분 수출하고 국내 전력의 약 98%를 수력 발전에서 얻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알루미늄 제련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석유로 얻은 횡재가 아니라 국민이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면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나라를 유지하는 노르웨이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경기변동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이 가능한 경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경제는이번 투자에서 반도체·AI 비중이 높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다양성이 넘친다. 다만 최근 들어 우려되는 점은 삼전닉스가 포함된 코스피는 활기를 띠지만 중기·벤처 중심의 코스닥에는 상대적으로 그늘이 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위한 반도체·AI 투자도 좋지만, 산업 간 격차에 따른 박탈감을 줄여줄 중기·벤처 산업 육성책도 절실하다. 그게 경제 민주화이고 산업 간 균형발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