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의 장기화되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중동 공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중동은 지난해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건설 수주 472억7000만달러 가운데 119억달러(25.1%)를 차지한 핵심 시장이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는 중동 국가에서 최대 수주실적을 거뒀으나 발주에도 제동이 걸리면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UAE(아랍에미리트)·이라크 등 핵심 국가의 사업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하던 네옴시티 터널 건설 프로젝트가 발주처의 사업 조정으로 계약 해지됐다고 밝혔다.

네옴시티 터널 건설 프로젝트는 사우디 타북주에 조성 중인 네옴시티 지하 터널 가운데 약 12.5㎞ 구간을 시공하는 공사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그리스 건설사 아키로돈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했다.

해당 터널은 네옴시티의 핵심 프로젝트인 선형 도시 '더 라인'(The Line) 지하에 건설될 예정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해당 터널을 통해 고속도로와 지하철, 화물 운송 철도를 함께 운행하는 교통망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총 사업 규모는 약 10억달러(한화 1조3000억원)이고 현대건설 지분은 약 7231억원 수준이다. 현대건설은 네옴컴퍼니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공식 공문을 수령했다고 설명했다. 계약 해지의 이유는 발주처 측의 사업 구조 재편이다. 현대건설은 "계약 해지는 발주처의 사업 재편에 따른 것으로 투자 정산이 완료돼 현재까지 회사에 발생한 재무 손실은 없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고유가 후폭풍…공사 일정 지연 우려

1조 단위의 사우디아라비아 사업이 중단되자 중동 국가의 육상·해상 등을 활용한 건설공사 일정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우와 이란, UAE 등 산유국을 연결하는 해상 통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러당 100달러까지 오르는 고유가 사태가 현실화됐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송전공사와 이라크 해수처리시설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사우디 지하철과 UAE 원전,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기지 등을 수주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중동 내 대사관과 본사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에서 신항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육상·해상 등 여러 경로를 활용해 직원 철수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한화 건설부문도 현지 대사관, 이라크 군 ·경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화 건설부문은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에 참여 중으로 현지 체류 중인 임직원과 가족들은 45명이다.

고환율도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설사의 금융·자재 비용을 올리는 부담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건설업은 반도체나 자동차 보다 공급망 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고도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동 사태 등 지정학 리스크에 따라 원자재 가격 급등과 물류 불안이 발생할 경우 공사비 조정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 급등 장기화를 대비해 핵심 자재의 수급·단가 관리가 필요하다"며 "건설기계·화물운송 지원책을 연계하고 타격이 큰 토목 현장의 물가변동계약금액조정(ESC) 지침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