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 2010년 12월 28일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다. 헌재의 7대 2 판결로 이 조항은 바로 효력을 잃었다. 위헌소원을 제기한 것은 박대성씨(필명 미네르바) 변호인단이었다.
16년 뒤인 2026년 7월 7일 대한민국에는 새 법률 조항(정보통신망법 44조의 7-②)이 생겨났다. '손해를 끼칠 의도 또는 부당한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허위조작정보는 ①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가 허위인 정보(허위정보) ②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조작정보)로 규정됐다. 둘 중 하나에만 해당되면 처벌이다. '부당한 이득'이나 '공공의 이익 침해'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이 법에 쓰여 있지 않다. 허위·조작 여부를 누가 판정하는지도 알 수 없다.
<'허위 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다.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2010년의 헌재 결정문에 준엄하게 적혀 있다. 민주사회의 상식 아닌가? 이런 대목도 있다. <'공익'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표현 행위가 과연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검열 수단 '심흔자사죄'
헌재는 성실히 해외 입법례도 살펴보고 결과를 간략히 결정문에 넣었다. <허위 사실의 유포를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현재 찾아보기가 힘들다.> 당시 재판관들이 중국을 민주국가로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중국에는 '공공장소에서 소동을 일으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심흔자사죄'(尋衅滋事罪, 형법 293조)라는 게 있었고, 지금도 있다. '공공장소'에 온라인 플랫폼이 포함된다. 중국 정부는 바이두·텐센트·바이트댄스 등에 유언비어 유포 방지 책임을 지운다. 이들은 인력과 인공지능(AI)을 동원해 실시간 자체 검열을 한다. 시진핑 주석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보기 힘들다. 간혹 올라와도 금세 사라진다.2010년 위헌소원의 발단은 박대성씨 처벌이었다. 1988년생인 박씨는 인터넷 포털 다음의 커뮤니티(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가끔 글을 게재했는데, '정부,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 주장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허위 사실이며, 이 때문에 환율 방어에 20억 달러가 쓰였다고 밝혔다. 박씨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항소심은 헌재 결정으로 공소 기각됐다. 1심 재판부는 허위 사실 게재는 인정하면서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17년 전 민주당, 미네르바 체포 규탄
2009년 1월 박씨가 체포돼 구속되자 민주당 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의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성명을 냈다.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난했다. 송영길 의원 등이 구치소에서 박씨를 만나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인터넷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로 사회적 혼란과 손해가 엄청나다고 주장했다. 2009년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추진했다. 전자는 민주당의 반대와 사회적 비판에 제동이 걸렸고, 후자는 실행됐으나 위헌 결정으로 3년 만에 사라졌다. 그랬던 민주당이 우리사회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허위조작정보 금지법(개정 정보통신망법)을 탄생시켰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과 박대성씨 처벌에 열을 올리던 당시 여권(지금은 야권) 인사들은 요즘 앞다투어 "입틀막법 폐기"를 외친다. 서는 곳이 바뀌니 보는 풍경이 달라진 것인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의 부조리극에 어질어질하다.헌재 결정문에 쓰여 있듯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인류는 오랫동안 신(神), 사제, 군주와 그의 대리인에 그 일을 맡겼다. 근대의 과학적 이성 발달로 그들의 독점 심판권은 허물어졌다. 그 누구도 진실 감별사의 지위를 가질 수 없게 됐다. 고도로 훈련받은 판사만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정신'이다. 절대적 진실은 없다. 잠정적 진실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허위 유포에 의한 공익 침해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2010년 헌재 결정문에 힌트가 있다.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하여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아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 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버 렉커'가 판치는 세상이라 한가한 소리로 들리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유민주주의의 숙명이 그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