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정책은 선의에서 출발하지만 성공이 담보되지 않는다. 전제됐던 상황이 바뀌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숙의를 거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더해야 납득 가능한 결과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자생력을 해치고 비용을 제3자에게 떠넘기면서 골칫덩어리로 전락하면 대가를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때도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1970년 석유사업법 제정 때 마련된 규정을 근거로 56년 만이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석유 판매가격의 상한을 정해 고시하고, 정유사는 이 가격을 넘겨 팔지 못한다.
미국-이란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대통령이 도입을 지시했다. 지난 19일 10차 가격이 고시되면서 시행 6개월을 넘겼다. 제도 시행 이후 전국 주유소의 석유제품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주유 부담이 크게 늘지 않으니 중동 전쟁 소식에도 소비자는 무덤덤하다. 물가 상승폭을 억눌렀다는 평가를 받지만 청구서가 이월됐을 뿐이다.
정유업계는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돼 공급과 수요가 왜곡되고 국내외 가격 차로 손실이 쌓인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최고액을 지정해 정유사가 손실을 보면 재정으로 보전하기로 했지만 손실 산정 방식은 불투명하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야 정상인데 최고가격제는 이 신호를 가렸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기름값이 올라 전 세계가 어렵지만 우리나라 석유제품 소비는 줄지 않고 견고하다. 7월 휘발유 소비량은 886만 배럴로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물가 안정을 노린 정책이 석유 과소비를 낳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4년 도입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 안팎에 불과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지하철이 놓인 일부 도시 어르신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지만 불만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고령화는 누구의 예상보다도 빨랐고 2024년 말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를 일군 어르신들에게 '이동권 보장' 혜택을 드리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지만 도시철도 공사의 천문학적 적자를 낳았고 국가 재정의 암초가 됐다. 무임승차 연령 상향이나 국비 지원을 둘러싼 논쟁이 매년 되풀이되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시행으로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 세금으로 메운다. 일부는 누리지도 못하는 서비스의 청구서를 떠안아야 한다. 조용한 다수가 비용을 나눠 떠안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부담은 애먼 곳으로 넘어간다. 수익자가 관련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인 사회에서 이 제도는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세대전이적 부채'이기도 하다.
선의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값을 누르거나 공짜로 푸는 제도에는 출구 조건과 일몰 시한을 정해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내준 혜택을 거두는 정치적 부담까지 작용한다. '상황을 봐가며' 연장을 거듭하다 보니 결단의 시점을 정하기 어렵다.
선의의 정책도 만기가 도래한다. 시한을 정해 놓아야 결과를 좋게 매듭지을 수 있다. 정책에 따른 손실과 수혜 규모를 정확히 따지고 그 손실을 누가 어떻게 메울지도 설계 단계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값을 묶는 손쉬운 처방은 뒤로 갈수록 치러야 할 비용이 비싸진다. 얇게 넓게 뿌리기보다 바우처(용도가 정해진 이용권)로 정작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게 낫다.
제도는 만들기보다 고치기가 훨씬 어렵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에는 더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특정 집단의 편익을 위해 다수 시민과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는 불공정은 멈춰야 한다. 냉정한 경제 논리와 형평성으로 제도를 손보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동행미디어 시대] 신문 발행 설명회](https://i.ytimg.com/vi/S-B3teLPv_A/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EC%9A%B0%EC%B8%A1%20%EC%B5%9C%ED%95%98%EB%8B%A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