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관 후보 재제청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끝내 정면충돌로 번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2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에 대해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곧바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인식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사법부 수장과 청와대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사태는 국민에게 큰 걱정을 안긴다. 여당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야당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치권마저 진영 대결에 가세하고 있다.
갈등의 출발점은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4명 가운데 대법원장이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하자, 청와대는 실질적 협의가 없었다며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법원장은 후보 제청권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청와대는 대통령의 임명권이 무력화돼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두 기관의 권한 범위와 재제청 절차를 두고 법률적 견해가 엇갈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헌법적 쟁점을 기싸움과 여론전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양측의 대치 속에 대법관 공석이 200일을 넘겼다. 대법원은 대법관 1인당 연간 수천 건의 사건을 심리하고 처리하는 과중한 구조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상고심 지연과 업무 부담은 커지고, 그 피해는 신속한 재판을 받아야 할 국민에게 돌아간다. 어느 쪽도 자신들의 '원칙'을 내세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뒤로 미룰 명분은 없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부여한 것은 어느 한 기관이 우위에 서라는 뜻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임명 절차를 작동시키라는 취지다. 권한은 상호 견제를 위한 것이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제청권이 절대적인지, 대통령에게 반려와 재협의의 권한이 있는지를 섣불리 단정하기보다 헌법의 취지에 맞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권한 충돌을 조정할 절차와 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선 직후 공개 충돌이 벌어진 것도 유감스럽다. 외교·안보 현안에 집중해야 할 때 국내 최고 헌법기관 간 대치가 또 하나의 국정 부담으로 더해졌다. 그렇다고 대통령 귀국 때까지 대법관 공석 문제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비난과 압박을 거두고 실무 협의부터 복원해야 한다.
청와대는 재제청 요구의 구체적 사유와 법적 근거를 분명히 밝히고, 대법원은 제청권의 독립성을 지키되 협의의 문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 기존 후보군을 둘러싼 이견이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면, 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보다 폭넓은 추천과 검증 절차를 밟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어느 한쪽의 뜻을 관철하는 길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절차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헌법기관 간 강 대 강 대결에 승자는 없다. 사법 공백을 끝내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청와대와 대법원이 먼저 져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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