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핵추진잠수함 연료 공급과 우라늄 농축 재처리, 조선 분야 협력 등 양국 간 현안이 폭넓게 다뤄진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북 대화 등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 의지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밝혔고, 양 정상은 '피스메이커'와 '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 물꼬를 틀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고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자신의 '북핵 3단계 해법'을 구체화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먼저 '중단(동결)'시킨 후, 단계적 '감축'을 거쳐 최종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로 나아가자는 구상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NYT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서 일거에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라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대북 제재와 북한의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거래가 현실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장기간 교착된 북핵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실용주의적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북한이 매년 10~20기의 핵무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무작정 '선(先) 비핵화'만을 되풀이하며 협상의 문조차 열지 못한다면 그 사이 북핵 위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달리는 차의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차를 세워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비유처럼 추가적인 핵 능력 증강부터 멈춰 세우고 협상을 시작하자는 구상에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적 접근법이 지닌 위험성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과거 북핵 협상의 실패가 주는 교훈도 무겁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00년대 6자회담의 역사가 증명하듯, 북한은 동결의 대가로 보상만 챙긴 뒤 검증 과정에서 비협조로 일관하며 합의를 파기해 왔다. 만약 이번에도 북한이 일부 시설의 동결만으로 제재 완화라는 실리를 챙긴 후 최종 비핵화 단계에서 발을 뺀다면, 자칫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묵인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두고 "어차피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언급한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비록 북한과 중·러와의 밀착으로 제재의 틈새가 커졌지만, 대북 제재는 여전히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당기고 무분별한 핵 질주를 제어할 최소한의 브레이크이자 우리 외교의 핵심 지렛대다. 이를 정부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국제 공조를 약화시키고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현재 북한의 태도가 극도로 냉랭하다는 점도 정부 구상이 현실화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한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남북 대화를 원천 차단하고 있으며, 22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하에 극초음속 미사일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결국 평화를 향한 실용적 해법은 철저히 단단한 안보 현실 위에 발을 붙여야 한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북·미 대화 재개의 여건을 조성하되, '동결'이 결코 최종 목적지가 아닌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중간 정거장이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협상력의 원천은 견고한 한·미 동맹과 빈틈없는 독자적 방위 역량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검증 없는 성급한 양보는 경계하고, 정교하고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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