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백만 관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한국 극장가에 남긴 현재까지의 기록이다. 인공지능이 판을 치는 21세기에 3000년 전 지중해를 떠돌았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천백만 한국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니, 경이롭기만 하다.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 사용을 절제하고 오롯이 아날로그의 손맛으로 빚어낸 영화라니, 분명 신화가 기계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 것만 같다. 각본도 눈여겨볼 만하다. 놀란 감독은 아내 엠마 토머스와 함께 직접 대본을 썼고, 오래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는 2026년의 영화 <오디세이>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다. 놀란 감독이 원전에 없는 내용을 보태, 3000년 묵은 신화를 새롭게 읽어냈다는 점이다. 그리스 문헌학자들도, 영화평론가들도 원작과 영화를 나란히 놓고 열심히 저울질했지만, 정작 이 대목은 놓치고 말았다.
사실 놀란 감독이 원작에서 덜어낸 대목도 적지 않다. 아이올로스의 바람 주머니 이야기, 표류 끝에 파이아케스인의 땅에 닿아 환대를 받으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 올리브 나무 밑동으로 만든 침대가 부부의 비밀을 드러내는 대목 등이 그렇다. 그러나 빠진 것보다 보태진 것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굵직한 장면들을 걷어 낼 만큼 러닝타임이 빠듯한데 원작에 없는 내용을 굳이 끼워 넣었다면, 그것은 놀란 감독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반영된 것이다. 그는 귀한 필름을 뜻없이 낭비할 사람이 아니다.
내가 놀란 장면은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집에서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구해 내는 대목이었다. 이 부분은 놀란 감독의 가필이다. 영화 속의 부하들은 돼지국밥처럼 생긴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다 돼지로 변한다. 호메로스의 원작에서는 포도주에 탄 약이 원인이었지만, 놀란 감독은 그 원인을 과식으로 돌렸다. 하긴 그렇게 먹어 대면 누구나 돼지가 되는 법이다. 돌아오지 않는 부하들을 구하러 달려온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집에 이르고, 놀란 감독이 창작한 대화가 이어진다.
오디세우스는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당장 사람으로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키르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한다. "내가 당신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게 아니오! 저것들은 원래 인간이 아니라 돼지였단 말이오. 저 꼴을 보시오." 키르케에 의하면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사람의 탈을 쓴 돼지, 즉 "천하고, 역겹고, 폭력적인"인 본성을 지닌 동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협박과 설득을 번갈아 퍼붓자, 키르케는 마지못해 돼지들에게 주술을 건다. 이 장면 역시 원작에는 없는 대목이다. 돼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키르케는 주문을 외운다. "돌아오라, 인간으로 위장한 모습으로(Come back, back into your disguises)..."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 충격적인 장면은 놀란 감독의 완전한 창작이다. 호메로스의 원작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원작에 대한 훼손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놀란 감독의 새로운 해석인가?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실은 탐욕스러운 돼지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라는 놀란 감독의 새로운 해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곰곰이 따져 보면 그의 해석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한국 정치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앞에서는 국민을 위한다며 목청을 높이지만 뒤에서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인간으로 위장한 돼지 같은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오해는 마시라. 이 글은 여든 야든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 봐야 그들의 속성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분노에 지쳐 체념에 빠진 동료 시민들께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한 번 더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정치인들의 위선과 탐욕에 대한 분노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한 돼지일 뿐이다. 잘못은, 우리가 그들의 위장술에 속았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임수경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그녀가 1989년에 방문했던 평양이 아니라, 2000년에 방문했던 광주의 하룻밤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그녀가 남긴 문제의 글을 찾아 읽었고 '새천년 NHK'가 일본 공영방송이 아니라 광주의 한 유흥주점, 그러니까 접대 여성이 시중을 드는 은밀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숭고한 5·18 전야제 밤에 그 키르케의 오두막 같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나는 이미 놀란 감독이 만든 키르케 장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정작 슬픈 것은 따로 있었다. 완벽하게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한 그들이 지금도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운동권 정치인이라는 훈장을 달고,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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