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읽는 인간]배터리가 먼저 닳는다-하이데거의 잡담, 한병철의 피로
휴대전화가 먼저 피곤해진다.배터리 잔량 39%. 아직 오전이다.무거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알림은 이미 여러 겹이다.선거철이다.모두가 입장을 가지고 있다.누군가는 단정했고,누군가는 분노했고,누군가는 해설을 붙였다.나는 아직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이미 결론이 나버린 세계가 도착해 있다.지친다.몸이 아니라 반응이 먼저 닳는다.생각보다 먼저 도착한 결론들 사이에서나는 잠깐 멈출 틈을 찾는다.그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아니, 보이기는 한다.다만 그 틈으로 들어가기 전에다음 알림이 온다.■ 허락된 알림, 허락된 긴장예전에는 회의 중에도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임원회의 자리에서 알림이 울리면 잠깐 고개를 숙였다.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울 수도 있었다.누군가는 말을 멈추지 않았고,누군가는 내가 누구의 메시지를 받는지 궁금해했다.그건 신뢰처럼 보였다. 동시에 긴장이었다.아무 때나 알림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누군가가 아무 때나 나를 호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권한은 늘 족쇄를 함께 데리고 온다.열려 있는 통로는 선택권이 아니라 상시 대기 상태다.그 시절의 알림은 결정과 연결되어 있었다.짧은 문장 하나가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배터리는 빨리 닳았지만내가 왜 닳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결정을 내려야 했고,대답을 해야 했고,책임이 있었다.일이 나를 소모시켰다.피로는 설명이 가능했다.설명 가능한 피로는 견딜 만했다.■ 잡담 속에서 사는 사람지금은 결정이 줄었고 책임도 가벼워졌다.그런데도 더 빨리 닳는다.뉴스 몇 개를 읽고,댓글 몇 줄을 훑고,짧은 동의와 짧은 냉소를 오간다.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일상 속에 유통되는 말을 '잡담(Gerede)'이라 불렀다.잡담은 나쁜 말이 아니다.거짓말도 아니다.그저 깊이를 통과하지 않은 말이다.이미 누군가가 정리해 둔 문장을다시 말하는 상태.생각의 형식을 빌렸지만생각의 과정은 생략된 언어다.생각을 하기 전에이미 누군가의 생각을 공유한다.말은 내 것이지만문장은 내 것이 아니다.하루에도 수십 번이미 완성된 문장을 소비한다.생각은 깊어지지 않는데감정은 계속 움직인다.작은 분노,짧은 연대,가벼운 판단.하루가 끝날 무렵무엇을 깊이 생각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소모하는 시대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오늘날 우리는 억압받는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주체에 가깝다고 말한다.과거의 사회가 "해야 한다"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사회는 "할 수 있다"로 움직인다.강요가 사라진 자리에 자기 착취가 들어선다.감시자는 없다.마감도 없다.벌칙도 없다.그런데도 나는 쉬지 않는다.참여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감각.그 감각이 나를 계속 화면 앞으로 데려온다.아무도 즉각적인 의견을 요구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나는 계속 반응한다.좋아요를 누르고,공유를 하고,짧은 단정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성과는 쌓이지 않는데소모는 분명하다.예전에는 일이 배터리를 닳게 했다.요즘엔 반응이 배터리를 깎는다.그때의 피로는 무거웠고지금의 피로는 얇다.얇아도 오래간다.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나를 낮은 전압 상태로 만든다.■ 덜 반응하는 기술어느 날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두고 책을 펼친다.알림은 오지 않는다.문장은 도망가지 않는다.한 문장을 세 번 읽는다.뜻이 바로 정리되지 않는다.손이 자꾸 휴대전화를 찾는다.그래도 글을 놓지 않는다.느림이 답답함이 아니라 저항이 된다.읽는 동안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멈춰 있는 사람이 된다.문장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당장 판단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생각은 천천히, 내 속도로 모양을 갖춘다.그 속도가 낯설다.뉴스의 속도와 다르고,알림의 속도와 다르다.처음엔 느리다고 생각했는데사실은 한동안 잊었던 내 원래의 속도는 아니었을까.오늘은 조금 덜 반응하기로 한다.세상은 그대로다.다만 나는 덜 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