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CNN·MS나우·폴리티코를 '가짜뉴스' 매체로 규정하며 백악관 출입을 막았다. 세 매체 기자들의 출입증도 무효화됐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이유로 특정 언론을 대통령 취재 현장에서 배제한 것이다. 세 매체는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더 눈길을 끈 건 다른 언론사들의 반응이었다. ABC·CBS·NBC·폭스뉴스는 공동으로 대통령 취재단 운영을 중단했다. 그 결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일정이 주요 방송 화면에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와 AP 등 주요 신문·통신사도 백악관 사진 게재를 중단하며 보이콧에 함께했다.
특히 폭스뉴스의 동참은 상징적이다. 폭스뉴스는 보수 시청층을 기반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정책을 대체로 우호적으로 다뤄 온 매체다. 그럼에도 경쟁사의 출입을 막는 선례가 모든 언론의 질문할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CNN 논조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앞서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법원은 24일 백악관 조치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 의견 제출 기회 없이 출입 권한을 박탈한 것은 문제라며, 본안 판단 전까지 출입증을 돌려주라는 임시금지명령을 내렸다. 이후 주요 방송사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고려해 공동취재를 재개했다. 다만 백악관은 CNN의 출입이 허용된 뒤에도 대통령 전용기 탑승과 취재단 참여를 제한했다. 출입증은 돌려줬지만 실제 취재 기회까지 온전히 보장할 뜻은 없다는 태도다.
백악관은 비판 언론을 내쫓은 직후 '트럼프 TV'라는 자체 스트리밍 채널도 내세웠다. 정부가 영상과 보도자료로 정책을 알리는 일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어느 정부나 홍보 수단을 갖고 있다. 문제는 언론의 취재와 질문을 제한한 자리를 정부가 편집한 화면으로 메우려 한다는 데 있다. 질문은 줄고 일방적인 메시지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 상황을 떠올려 보게 된다. 어느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방송을 왜곡 보도나 가짜뉴스로 지목해 대통령실 출입을 금지한다고 하자. 대신 정부는 자체 방송을 앞세워 국정 홍보에 나선다. 그때 진보와 보수 언론,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름 아래 함께 설 수 있을까.
선뜻 장담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언론을 공정한 심판자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증거가 되고, 상대에게 불리한 보도는 당연한 감시로 여기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는 같은 진영 안에서도 이런 인식이 뚜렷하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언론 지형이 이른바 '뉴이재명' 쪽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한 것도 그런 불신의 한 단면이다. 반대로 김민석 대표가 '민주당TV'를 밀어붙이는 현실 역시 기존 언론과 대형 유튜브가 사실을 왜곡한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런 정치권의 인식이 언론의 진영화를 부추기고 언론 스스로 공통의 원칙을 논의할 여지를 좁힌다는 데 있다. 언론사끼리 경쟁하고 논조가 다른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실 확인, 반론권 보장, 권력 감시, 취재의 자유처럼 경쟁에 앞서는 원칙마저 진영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면 연대는 어려워진다. 어느 보도가 이 기준을 지켰는지보다 어느 편에 유리했는지가 먼저 평가되는 순간, 언론의 독립성과 시민의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뉴스가 소비되고 생산되는 방식이 급변한 것도 이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튜브 저널리즘은 공론장을 넓히고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통로를 늘렸다는 장점이 분명하다. 하지만 매체와 채널이 잘게 나뉘고 각자의 지지층을 향한 발신이 강해질수록, 서로 다른 언론이 저널리즘의 공통 기준을 논의하고 다듬는 목소리는 오히려 작아졌다.
언론도 자유의 이름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속보 경쟁에 밀린 성급한 보도, 클릭을 노린 제목, 사실과 의견을 뒤섞은 논평, 진영의 기대에 맞춘 선택적 인용은 언론 불신을 키운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반복하거나 불리한 정보는 빼고 유리한 장면만 부각하는 순간, 언론은 보도가 아니라 동원에 가까워진다. 언론이 스스로 존립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연대도, 국민적 공감도 얻기 어렵다.
'트럼프 TV'가 던지는 질문은 미국에만 향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은 정권의 성향과 이해관계를 넘어, 취재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원칙 앞에 함께 설 준비가 돼 있는가. 권력은 불편한 질문을 견뎌야 하고, 언론은 그 질문이 시민의 신뢰를 얻을 만큼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 원칙이 진영보다 뒤로 밀리는 순간, 언론이 비운 자리는 언제든 권력이 만든 영상으로 채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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