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을 반복 경험한 가계일수록 환율 상승에도 소비를 덜 줄이는 등 충격 적응력이 높아진다는 한은 분석이 나왔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원/달러 환율 급등을 여러 차례 겪은 가계일수록 환율이 올라도 소비를 덜 줄인다는 분석이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반복된 환율 충격에 우리나라 가계가 적응했다는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가계소비를 위축시킨다는 통념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최영준 거시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1일 BOK 경제연구 '환율급등 경험과 가계소비 간의 관계 분석' 보고서를 통해 환율급등을 더 많이 경험한 이들일수록 환율상승기 소비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과거 환율급등을 많이 경험한 가계일수록 현재 환율이 오르더라도 소비를 상대적으로 덜 줄인다는 뜻이다.



최 연구위원은 "환율 급등 경험이 많을수록 환율 상승이 가계소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노동패널 1998~2024년 자료를 썼다. 환율이 장기 추세를 일정 수준 이상 웃돈 1998년, 2001년, 2008~2009년, 2015년, 2019년, 2022년, 2024년을 급등기로 정의하고 가구주 연령에 따라 경험치를 산출했다.

보고서가 인용한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 자료를 보면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기준 1997년 951.1원에서 1998년 1398.9원으로 47.1% 올랐다. 당시 가계소비는 1997년 4분기 이후 급감해 5개 분기가 지나도록 회복하지 못했고 소비자심리지수는 64까지 떨어졌다. 반면 2000년 IT 버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소비 증가세가 둔화했을 뿐 감소로까지 돌아서지는 않았다. 미국-이란 전쟁이 발생한 올 3월16일에도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원을 웃돌며 2009년 3월 이후 17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환율급등 시기의 소비성향이 종전대로 유지되는 모습은 선택재, 즉 개인의 선호나 취향 등에 따라 소비하는 재화에서 주로 나타났다. 특히 통신비가 기존 소비성향이 유지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내구재 소비는 환율이 높을수록 유의하게 줄었다. 최 연구위원은 "통신비 결과를 품목별로 이질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으며 통신비만 떼어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세대별로는 X세대에서 소비를 지탱하는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났지만 MZ세대에서는 반대로 소비 위축 효과가 컸다. 최 연구위원은 "MZ세대가 환율 급등을 경험한 게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까 적응이 조금 덜 됐다"고 진단했다. 세대를 구분한 출생 연도 기준은 추후 밝히겠다고 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관측치가 부족해 추정하지 못했다. 자산별로는 하위 자산계층(2분위)에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별로는 최상위 분위에서 적응 양상이 뚜렷했다.

한계도 있다. 보고서는 환율 급등기에 함께 나타난 실업 증가와 소득 감소 등 다른 거시충격의 경험을 완전히 분리해 식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물자산 결측치 탓에 모든 통제변수를 넣은 모형의 표본은 5만3685개에서 4460개로 줄었다. 최 연구위원은 연도 등 고정효과를 통제해 환율 급등 경험의 영향만 추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