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 A씨가 일하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는 '직장 내 괴롭힘 센터'가 있다. 하지만 A씨는 "아무도 안 간다"고 단언했다. 선배 간호사에게 뺨을 맞은 후배 간호사가 센터에 신고했지만, 병원은 가해 간호사의 근무 병동을 옮기는 선에서 사건이 매듭지은 탓이다. 가해 간호사는 옮긴 병동에서도 후배에게 폭언을 일삼는다고 A씨는 전했다.
신규 간호사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을 당해도 간호사 4명 중 3명은 참고 넘어간다는 실태조사가 나왔다. 간호사 인권 침해에 대응하는 관리 체계가 병원마다 만들어졌지만, 병원 내부의 기구인 탓에 신고해도 별 변화가 없다는 무력감이 병원 현장에 팽배한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6일 간호사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 8월3일부터 24일까지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 210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실시됐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겪은 간호사 863명의 76.4%(659명)가 '대응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무대응 이유로는 '신고해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83.8%로 가장 많았다. 대응한 간호사 204명 역시 68.1%가 '신고 이후 변화가 없었다'고 답했다.
지난 6월 태움 피해를 호소하며 숨진 고 강수빈 간호사는 병원 퇴사 뒤 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병원 측은 고인을 괴롭힌 선배 간호사 3명 중 1명만 훈계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병원 내 인권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조사와 후속조치를 전담할 외부 대응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신고와 조사, 징계 등 모든 의무가 사용자에게 있다. 위계가 공고한 병원에선 내부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기 힘들다. 병원 인사·감사팀만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만간 태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강씨 사건이 보도된 뒤 지난 7월 SNS에 간호인력지원센터와 보건의료인력 인권지원센터를 통해 태움 피해 간호사의 심리상담과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대응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했다. 국회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 조사위원회를 꾸릴 때 피해자 의사를 반영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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