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 보안 문제로 한·미 관계가 날로 꼬이고 있다. 지난 3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의 평안북도 구성을 새로운 핵시설 소재지로 언급하면서 공유정보 누설 논란이 시작된 이래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도 12일(현지 시각) 국정감사에서 한·미 정보협력 문제가 양국 동맹 외교에서 가장 어려운 현안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이 언급한 '구성'은 이미 학자들도 거론했던 것이라 별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정보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정보의 관점에선 사소한 보안 관리의 실책이 판단 착오를 부를 수 있고, 이는 장차 '정보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보 실패는 정보의 수집·보안·분석·전달, 그리고 정책반영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국가·조직이 주요 위협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가리킨다. 정보세계에선 사소한 실수도 눈덩이처럼 커져 자칫 국가와 국민을 위협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군사학이나 국가정보학에서 국가를 위협할 정도의 대형 정보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것이 1973년 10월 벌어진 욤 키푸르 전쟁이다. 이슬람 세계의 라마단(단식월)과 유대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의 날)가 겹치는 날에 발발한 이집트·시리아 등의 전격 기습에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국가 존망의 기로를 맞았다. 19일간의 전투에서 440대의 전투기 중 102~387대가 격추되거나 파괴됐으며, 1700대의 전차 중 400~800대가 파괴되고 600대가 손상되거나 노획당하는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2521~2800명이 숨지고 7250~8800명이 부상했으며, 293명이 포로가 됐다고 하니 인명피해도 상당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보실패는 정보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집된 정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발생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 정보국인 '아만'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 공군력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기와 미사일이 부족해 전면전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와 시리아는 소련이 제공한 지대공 미사일과 보병용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그리고 자주대공포 등 최신 방공무기를 밀집 배치해 '미사일 우산'을 형성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공중전력 우위를 눌렀다. 이스라엘 전차들은 소련제 대전차 미사일을 쏘아대는 아랍 보병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모사드는 이집트 대통령 비서실의 보좌관인 '이중간첩' 아슈라프 마르완으로부터 전쟁 개시일 정보를 전달받았다. 마르완은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사위로 나세르와 그 후임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한 특급 정보자산이었다. 국가 안보와 왕실 생존을 위해 실리외교를 펼치던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으로부터도 정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보 수뇌부는 이를 묵살했다. 1967년 아랍 연합군을 대파한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으로 생긴 적에 대한 우월감이 냉정한 판단을 막은 셈이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배치되는 정보는 배제하는 확증편향과 집단사고도 한몫한 것으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골다 메이어 총리와 모세 다얀 국방부 장관 등 국가지도부가 사회적 부담과 국민 불만 등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은 미국이 나서 휴전을 이끌면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전쟁이 끝나자 오판과 패전의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 그리고 정보와 군사 부문 개혁을 논의할 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회는 확증편향을 유발할 수 있는 군 정보기관의 군사정보 분석독점 구조를 깨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성격의 기구를 신설하고, 해외정보를 맡은 모사드와 외무부에도 독자적인 연구·분석 부서를 확대 가동하는 등 정보기관의 대대적인 개혁을 이끌었다. 메이어 총리와 전쟁 영웅인 다얀 장관은 사태를 책임지고 이듬해에 물러났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 정보당국은 개별적으론 수많은 징후를 포착했지만, 기관 간의 벽과 판단 실수로 비극을 막지 못했다. 미국은 실패를 바탕으로 2004년 '국가정보 개혁과 테러리즘 방지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2005년 중앙정보국(CIA)·연방수사국(FBI)과 각 군 정보국 등 18개 정보기관을 지휘·통솔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했다. 시너지를 높여 판단 착오를 막기 위해서다.
주목할 사실은 DNI가 대통령 직속이 아니라 독립 기관이라는 점이다. 조직의 수장이나 간부들이 권력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 장치다. DNI 국장은 모든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백악관 및 각 부처와 긴밀하게 연락망을 유지한다. 정보기관과 정부 간 쌍방 정보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다. 미국에서 정보 개혁은 정보 강화를 위해 기관 통합과 위상 강화로 이어졌다. 정보의 가치를 존중하는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인식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의 이 구절은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이기도 하다. 전 세계 어느 정보기관에서도 가슴에 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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