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속 캐릭터가 밀리언셀러가 되고,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로봇 아이돌의 해외 상설 공연장 건립까지 가시화되는 등 기술을 앞세운 K팝 산업이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의 버튜버(VTuber) 산업이 글로벌 버추얼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키웠다면, 한국은 K팝 특유의 음악·팬덤·공연 시스템을 결합해 버추얼 아티스트를 주류 음악시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AI와 로봇 기술까지 가세하면서 K팝이 로봇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이다.
실제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모션캡처 기술로 디지털 캐릭터에 구현한 버추얼 아이돌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을 넘어 K팝 시장의 핵심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을 선도하는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는 지난 12일 발매한 미니 5집 '하이퍼드라이브' 수록곡 5곡 전부를 멜론, 지니, 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 플랫폼 톱5에 진입시키며 음원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앞서 발매한 앨범은 첫 주 판매량 103만장을 넘기며 버추얼 가수 최초로 초동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한 데 이어 지난 9월 인천문학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으며, 현재 월드투어를 진행 중이다.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임희윤 대중문화 평론가·크로스커런트 전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에서 정식 데뷔한 아이돌 그룹 45개 팀 가운데 10개 팀이 버추얼 그룹이었다. 신인 아이돌 5팀 중 1팀이 버추얼 아티스트인 셈이다. 엔터 업계에 따르면 신인 아이돌 한 팀을 육성해 데뷔시키기까지 최소 30억~50억원 수준의 초기 비용과 3~5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버추얼 그룹은 시공간 제약이 적어 활동 효율이 높고, 사생활 리스크로 인한 IP 가치 훼손 우려가 낮아 자본 유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AI 기술을 결합해 팬덤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세계관을 넓혀가는 솔로 가수 슬릭트(SLIKT)처럼 사업 모델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버추얼에 이어 휴머노이드 기반 '로봇 아이돌'도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형 공연과 아이돌 콘서트에 등장하는 등 로봇의 무대 활용이 빠르게 퍼지고 있지만, 아직은 댄서나 퍼포머 역할이 대부분이댜. 한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K팝 아티스트의 IP와 세계관을 로봇에 입혀 독립된 로봇 아이돌로 만들고, 상설 공연과 월드투어로 확장하는 사업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엔터 테크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은 내년 상반기 로봇 아이돌을 론칭하고 월드투어에 나설 계획이다. 회사는 소속 아티스트인 지드래곤과 태민의 IP를 활용해 로봇과 K팝의 결합을 구현해왔다. 최근 최용호 대표는 "뉴욕과 두바이 등에 K팝 상설 공연장인 '로봇 아레나'를 세워 기존 K팝이 닿기 어려웠던 지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간 1000회 이상 공연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나아가 아티스트의 페르소나와 감성적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로봇 운영체제 '소울웨어'(Soulware)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를 로봇 대중화의 접점으로 삼을 예정이다.
아직 기술의 발전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로봇 공연 계획을 두고도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기존 아티스트의 활동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추가 소비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티스트의 독창성과 희소성이 핵심인 K팝 시장에서 기술적 무한 복제가 도리어 IP의 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팬덤의 유대가 중요한 만큼 로봇 공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업계에서는 팬덤을 움직이는 힘은 기술보다 '서사와 진정성'을 꼽는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팬덤이 지갑을 열고 시간을 쏟는 이유는 완벽한 기계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 아티스트만의 고유한 서사에 있다"며 "로봇 아이돌 역시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팬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플레이브도 초기에는 낯선 형식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멤버들이 작사·작곡 ·프로듀싱 ·안무 창작에 참여하고 라이브 방송 등으로 소통하며 팬덤을 확장했다. 로봇 아이돌도 정교한 군무와 기술력을 넘어 팬들이 공감할 음악과 서사, 차별화된 매력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버추얼에서 로봇으로 영역을 넓히는 K팝이 새로운 글로벌 팬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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