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객원교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3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면서 한국인의 자부심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반면 세계 2위 경제대국이던 일본은 3만5000여 달러로 예측돼 '한일 역전'의 도취감마저 안겨준다. IMF가 잡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한국 3.3%인 데 비해 일본은 0.7%대에 머물렀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IMF는 한국의 성장률을 1%로 잡으며 저성장의 고착화를 우려했는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누가 봐도 반도체 특수 덕분일 것이다. 부디 그 온기가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한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일본 상황인데, 내년이면 명목 GDP가 현재의 세계 4위에서 6위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1968년 세계 2위로 부상한 뒤 2010년 중국, 2023년 독일에 밀려난 데 이어 내년엔 인도와 영국에도 추월당하는 것이다. 고질적인 엔화 약세 탓이 있지만 바닥권에서 정체된 성장률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왜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을 듣는 조롱의 대상이 됐을까.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저서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부키)'에서 일본 경제 정체의 원인으로 세가지, 즉 버블붕괴와 인구감소,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꼽았다. 인구감소는 생산연령인구(만 15~64세)의 감소를 뜻하는데 일본은 1996년, 한국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21년 늦게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셈이다.

실제로 '일손부족'은 일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에 '정년 60세'를 법제화한 뒤 고령자고용안정법을 수차례 고치며 2013년 '희망자 전원 65세까지 계속고용'을, 2021년에는 '0세까지 '취업 확보 조치 노력'을 의무화했다. 동시에 연금수령 기준연령을 12년에 걸쳐 상향했다. 고령층을 생산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책인 동시에 고령층의 복지 부담을 정부가 기업에 떠넘긴 측면도 있다.

세상사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지난해 7월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4%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45세 이상 중장년층이었다. 당장 일손부족을 메울 수는 있지만 혁신과 창의력이 발휘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령자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으니 구조적 소비침체도 여전하다.



필자는 2000년대 들어 두차례 일본에서 일했는데, 처음 특파원으로 간 2006년과 두번째 부임한 2016년의 일본 사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여러 이유 중에는 고령화가 진행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 경 일본은 성숙했지만 활력이 있었다. 거리에 멋쟁이가 넘쳤고, 서비스업의 섬세함은 극에 달했다. 고령화율이 막 20%를 넘은 시점이었다. 2016년에는 다소 소박하고 털털해진 모습이었다. 사람 손길이 못 미치는 곳이 늘어 공중화장실에서 악취가 나거나, 저녁 무렵 도쿄 긴자 뒷골목에서 쥐가 뛰어다니기도 했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힘겹게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시 고령화율이 27.3%였다.

한국은 지난해 고령자 비율 20%를 넘어 초고령화사회에 돌입했다. 조금 늙수구레하지만 활력 넘치는 장년층이 거리를 활보한다. 아무리 봐도 2006년 경 일본 분위기와 유사하다. 반도체 호황에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부가 발표한 2022년 기준 장래인구추계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게 부양비다. 196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83명을 부양했다. 이중 77명은 14세 이하 청소년이었다. 집집마다 너덧 명씩 낳은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쪼들리며 일하던 시절이었다. 2022년엔 100명이 41명을 부양했다. 14세 이하 청소년이 16명, 고령자가 25명이었다. 사실 한국 인구구조의 '화양연화'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였다.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가장 높아 경제활력이 정점을 찍었고 아이 양육에도, 노인 부양에도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드는 홀가분한 시기였다. 지금은 그 화양연화의 끝자락인 셈이다.

하지만 2072년이 되면 100명이 104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고령화율은 47.7%로 추정된다. 고령자가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고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50년 후 한국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 프랑스의 시위 소식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항의로 시작됐지만 노동조합과 시민들까지 합세해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제조업과 성장, 혁신이 사라진 가운데 퍼주기 복지 정책을 남발한 결과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어느 나라건 정치권은 자기 임기 내에 성과가 나오지 않을 일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타산지석들을 참고삼아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서영아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객원교수는 동아일보 도쿄지국장과 논설위원, 콘텐츠기획본부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한일관계와 고령 사회 문제 등에 천착해 왔다. 정년퇴직 직전 5년간 동아일보에 '서영아의 100세 카페'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