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대남 확성기를 수일 안에 대기 상태에 두겠다고 예고하자 정부도 '비례적 조치'를 언급하면서 1년 4개월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간 대북 확성기를 체제 위협으로 여겨 온 북한이 이번에는 확성기 카드를 먼저 꺼내 든 셈이다. 남북이 확성기로 맞서면 포격전이 벌어진 2015년처럼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만약 북한이 뭔가를 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비례적 조치가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은 하고 있다"면서도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장도영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북한의 담화 이전부터 일상적인 정비 활동이 식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확성기 카드는 사흘 새 '검토'에서 '시점 예고'로 구체화됐다. 김 부장은 19일 담화에서 우리 군이 지난 8월 1일부터 이달 17일까지 확성기 경고방송을 2870차례, 경고사격을 201차례 했다고 주장하며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21일에는 "10월 중으로 대한국 심리전 확성기들이 전 국경선에서 가동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루 뒤인 이날 새벽에는 "대한국확성기들도 수일 안으로 대기상태에 들어가게 된다"고 예고했다.
2015년에는 확성기 대치가 준전시상태 선포로 번졌다. 그해 8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 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자 정부는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확성기를 겨냥해 포격했다. 우리 군이 자주포로 대응 사격하자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긴장은 남북이 무박 4일 고위급 접촉 끝에 북한의 유감 표명과 확성기 방송 중단에 합의하고서야 가라앉았다.
북한이 확성기를 먼저 꺼내 든 것은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직후 대남 확성기를 다시 설치한 이래 6년여 만이다. 이번 압박은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일대 요새화 공사와 맞물려 있다. 남북이 MDL 위치를 달리 인식하는 가운데 김 부장은 공사 중 MDL을 넘은 북한군에 대한 우리 군의 경고방송·경고사격을 도발로 규정해 왔다. 확성기로 우리 군의 대응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로서는 어느 쪽을 택해도 부담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8월에는 시설까지 철거했다. 반면 북한은 지난해 8월 대남 확성기를 철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가 방송을 재개하려면 고정식 장비를 재설치하거나 이동식 장비를 재가동해야 한다. 유화 기조도 스스로 뒤집어야 한다. 그렇다고 재개하지 않으면 군 당국이 언급한 '비례적 조치'와 어긋나 '저자세 대응'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김 부장이 이재명 정부의 '반공화국 대결 책동'이 윤석열 정부를 훨씬 능가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딜레마를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긴장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고 남남갈등을 키우는 동시에 정부의 대응 수위를 떠보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과거와 같은 심리전 방송까지 이어 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봤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북한이 무조건 (확성기를) 틀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설치해 놓고 남측의 대응 수위에 따라 가동 여부를 정하겠다는 사전 경고 성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대남 확성기 재개를) 한다면 우리도 비례 대응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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