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치고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인 투자자들 덕분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인들이 미국 부동산을 무더기로 쇼핑하면서 미국 부동산 거래가 늘고 가격도 일부 지역에서 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러한 관측은 최근 부동산 지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매매계약이 체결된 주택을 토대로 작성되는 잠정 주택매매지수는 지난 5월에 2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 5월 신규주택 매매건수도 2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지난 5월 기존주택 매매건수는 전달보다 1.5% 감소해 주춤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주택 매매건수는 올 들어 2월과 3월 두달 연속 줄어든 뒤 4월에 3.4% 늘었으나 한달만에 다시 감소로 돌아섰다.

기존주택 매매는 주춤한 반면 신규주택 매매는 큰 폭으로 늘어난데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중국인들이 신축 건물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뉴욕과 L.A. 등에 새로 지어지는 주택들은 중국인들이 입도선매하는 양상이다.

지난 6개월간 중국인들은 뉴욕 맨해튼 72번가에 건설되고 있는 90층짜리 고급 거주시설인 원57(One57) 10~15채의 매입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57은 거주시설로는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건설 중이다.
 
 
 
맨해튼 고급 주거시설, 중국인이 '찜'

중국 대기업인 HNA그룹은 최근 뉴욕에 상업용 부동산 몇 개를 사들인데 이어 원57의 전층 아파트 2채와 한 층에 아파트 2채가 있는 반층 아파트 2채 등 총 4채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57은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 동쪽으로는 이스트강이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조망권과 고급 호텔인 파크 하얏트의 맞춤화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AEG가 건설하고 있는 L.A. 다운타운의 릿츠-칼튼 레지던스도 최근 중국인들이 대거 사들이고 있다. 릿츠-칼튼 레지던스는 방 하나짜리가 85만달러이고 좀더 큰 평수는 250만달러, 펜트하우스는 최고 930만달러이다. 

L.A. 남쪽에 위치한 어빈이란 도시에 새로 건설된 고급 주택단지인 램버트 랜치도 중국인들이 줄지어 매수하고 있다. 램버트 랜치는 한 채 가격이 90만달러에서 150만달러로 지금까지 팔린 주택의 절반 가량을 중국인들로 추정되는 아시아인들이 매입했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12개월간 미국에서 팔린 주택의 약 90억달러 어치를 홍콩을 포함한 중국인들이 매입했다. 이는 2010년 중국인들의 주택 매입 금액에 비해 89% 급증한 것이며 캐나다인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부동산 중개인들은 오히려 중국인들의 매수 규모가 과소평가됐다고 보고 있다. NAR의 통계는 여러 곳에 매물로 등록됐던 주택들만 계산한 것이며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매매는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의 고급 주택 중개업자인 I. 돌리 렌즈는 WSJ와 인터뷰에서 최근 고객의 절반 가량이 중국인으로 2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코코랜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인 파멜라 리브먼은 중국인들의 고급 부동산 매입이 올들어 급격하게 늘면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부자들, 미국으로 눈 돌리는 이유

중국인들이 미국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주택 버블을 우려해 주택 구입에 각종 제한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다주택자의 주택 매입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으며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은 채무위기를 겪고 있어 투자하기가 다소 불안하다는 점과 위안화가 2010년 6월 이후 미국 달러화 대비 7% 절상됐다는 점도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홍콩에서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을 주선하고 있는 패트릭 오닐은 "미국은 금리가 낮은데다 주택 가격이 크게 떨어져 (중국인들의) 안전한 투자 기착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눠진다. 첫째는 거주 목적으로 1500만달러 이상의 고가 부동산을 매입하는 슈퍼 리치, 둘째는 역시 거주 목적으로 수백만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평범한 부자들이다.

셋째는 투자 목적으로 100만~200만달러의 주택을 매입해 임대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넷째 부류는 투자 목적으로 미국 부동산을 무더기로 사들이는 큰 손들이다. 예를 들어 팡 이 리우라는 중국 상하이의 사업가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근에 건설된 크루즈선 모양의 현대식 유리 건물인 아텍(Artech)의 아파트를 17채나 사들였다.

최근 중국인들이 미국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데 대해 1980년대 일본인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 열풍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미국 부동산 쇼핑은 1980년대 일본인들과 2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중국인들은 가격을 철저히 따지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둘째, 값비싼 부동산도 주로 현금으로 사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일본인들은 부동산 버블에 취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미국 부동산을 사들인데다 대출에 많이 의존했다.

중국인들이 미국 부동산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설계 당시부터 중국인 고객을 염두에 둔 주택 건설 프로젝트도 늘고 있다.

원57은 건축 설계 때부터 돈 많은 중국 고객을 겨냥해 가장 넓고 호화스러운 전층 아파트를 80층에서 88층에 배치했다. 중국인들이 8을 행운의 숫자로 여겨 좋아한다는 사실을 감안한 것이다. 5000만달러에 달하는 원57 전층아파트는 HNA그룹이 이미 2채를 매입한데 이어 88층도 중국인 매수자와 계약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주 어빈의 램버트 랜치는 주택단지의 주요 도로가 남북 방향으로 배치돼 모든 주택이 남향으로 설계됐다. 미국인들은 주택이 어느 방향이든 별로 개의치 않지만 유독 남향을 선호하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고객을 위한 배려다.

램버트 랜치는 또 향이 심한 중국 음식을 감안해 부엌을 독립된 공간으로 배치했고 조부모를 위한 고객용 방도 따로 갖췄다. 아울러 중국인들이 4라는 숫자를 불길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해 번지수도 아예 50번부터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L.A.에 건설되고 있는 릿츠-칼튼 레지던스의 해외 판매 책임자인 짐 제이콥스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여기야말로 우리 고객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실크루트아시아 캐피탈 파트너스라는 부동산 자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스티브 로는 미국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확보해두고 싶다며 미국인들의 주택 매입은 걱정스럽지 않지만 다른 아시아 투자자들이 미국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부자들은 분산투자 차원에서 자산의 10~25%를 미국 자산에 투자하기를 원하다"며 "아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자산은 바로 부동산"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