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직장인 양모씨(40)는 최근 통장을 정리하다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금리인하에 나섰지만 자신이 매달 내는 이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씨가 거래은행에 직접 방문해 이유를 묻자 "은행에서 적용하는 최고금리 이용자들만 혜택을 주는 것일 뿐 모든 고객의 이자를 내려주는 것은 아니다"는 허탈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권이 일제히 대출 최고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지만 혜택을 받는 고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 담합 의혹 등으로 이미 은행에 크게 실망한 고객들이 또 다시 은행들의 '꼼수'에 속을 태우는 실정이다.
 


사진_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실효성 없는 대출금리 인하 논란
 
최근 학벌 등으로 금리를 차별해 논란을 빚은 신한은행은 서민금융·중소기업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가계대출 최고금리를 17%에서 14%로 인하했다. 기업대출 역시 최고금리를 15%에서 12%로 3%포인트씩 내렸다.
 
고금리 이용자들을 위한 대책안도 내놨다.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연 14%대 금리의 서민전용 대출상품도 선보이기로 한 것. 아울러 영업점장이 임의로 금리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었던 '금리전결권'도 전격 제한하기로 했다. 대출금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대출서류 조작 논란으로 곤혹을 치룬 국민은행도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최고금리를 연 18%에서 15%로 3%포인트 인하했다.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보증을 받아 이용하는 보증부여신은 최고금리를 18%에서 13%까지 5%포인트 낮췄다.
 
운 좋게 비난 대상에서는 벗어난 다른 시중은행들도 금리인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8월13일부터 가계대출 최고금리를 16%에서 14%로 2%포인트 인하했다. 기업은행 역시 8월1일부터 중소기업대출 최고금리를 연 12%에서 10.5%로 인하했다. 연체대출 최고금리 역시 연 13%에서 12%로 1%포인트 낮췄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연체대출 최고금리를 연 18%에서 13%로, 올해 초부터는 중기대출 최고금리를 연 17%에서 12%로 내렸다.
 
우리은행도 현재 17% 수준인 대출 최고금리를 14%로 3%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대출금리 상한선을 최고 19%에서 17%로 2%포인트 낮춘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고금리 인하가 확정될 경우 약 8개월만에 또다시 3%포인트를 인하하게 된다.
 
지주계열 저축은행도 잇따라 금리인하에 나서고 있다. 하나저축은행은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기존 제2금융권 대출보다 금리를 다소 낮춘 새로운 신용대출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학생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특정 고객층을 위한 상품이 주를 이뤘지만 앞으로는 폭넓은 고객층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CD금리 담합 의혹과 대출서류 조작 논란 등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또한 감사원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은행 가산금리 체계를 비판하며 '금리 손질' 기회를 엿보는 점도 이번 대출금리 인하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은행들의 꼼수 전략이다. 일부 금융권이 최고대출금리를 인하했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대상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A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고객 80만명 중 0.8%인 7000명 정도만 이번 금리인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번 금리인하로 국민은행이 연 52억원, 신한은행이 71억원, 하나은행이 10억원 정도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대출규모에 비하면 대출인하 효과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민병두 통합민주당 의원은 "최근 몇몇 은행들이 2~3%포인트씩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있지만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면서 "얼마 전 감사원 감사결과 은행들이 부당하게 수취한 이자이익은 무려 20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대출금리 인하?… 생색내는 보험사들
 
이와 같은 상황은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교보생명은 10월부터 약관대출 최고금리를 기존 13.5%에서 10.5%로 3%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흥국생명도 현재 4.75∼13.5%인 확정금리형 약관대출금리를 내달부터 4.75∼11.5%로 내리고 확정금리형 가산금리도 1.5%에서 0.5%로 1%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알리안츠생명 역시 현재 13.5%인 약관대출 최고금리를 내달부터 11%로 내린다.
 
앞서 지난 6월 AIA생명은 12.3%에서 11.3%로, 대한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은 11.5%에서 10.5%로, 삼성생명은 10.5%에서 9.9%로 각각 내렸다. 신한생명도 10.5%로, 현대라이프는 11.5%로 각각 인하했다.
 
NH농협생명은 이달에 약관대출금리를 6.1%로 0.1%포인트 내렸다. 하나HSBC생명도 금리연동형 약관대출 금리를 4.8∼6.55%에서 4.38∼6.45%로 하향 조정했다. PCA생명는 금리연동형 약관대출 금리를 4.9∼7.5%에서 4.6∼6.5%로 내렸다.
 
하지만 최고금리를 낮추겠다고 밝힌 약관대출 상품은 대부분 '백수보험'(100세까지 보장)을 담보로 하는 상품이다. 이 보험은 시중금리가 연 20% 이상이던 1980년대 초반에 판매된 상품이다. 이후 배당금 미지급 논란 등이 불거지며 대부분의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한 상태다.
 
예컨대 B보험사의 경우 100여명만 이 보험을 유지하고 있는 등 전체 계약에서 백수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서민금융 지원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서 "이제는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금융권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