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옥션이 가진 9월 가을 경매에서 서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이 34억원에 낙찰됐다. 퇴우이선생진적첩은 26억원부터 5000만원 단위로 호가를 시작했는데 치열한 경합 끝에 전화 응찰자에게 34억원에 팔렸다. 한국 경매시장에서 고미술 분야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퇴우이선생 ‘진적첩’ 표지
종전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3월 마이아트옥션에서 낙찰된 조선시대 도자기인 '백자청화운룡문호'로 당시 낙찰가는 18억원이었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에서도 한국 도자기가 높은 값에 팔렸다. 조선시대 백자가 36억원에 팔리면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경기 침체의 여파에 양도소득세 부과 소식 등으로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던 한국 미술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지 주목된다.
문화재 보물이 경매시장에 '첫선'
퇴우이선생진적첩(이하 진적첩)은 1975년 5월1일 보물 585호로 지정됐다. 지정문화재인 보물이 경매시장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적첩은 조선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 여기에 한국미술사의 최고거장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 등이 곁들여진 작품이다. '퇴우'는 퇴계와 우암의 첫글자를 딴 명칭이다. 서화첩에 담겨 있는 발문들은 퇴계 이황부터 소장가들이 작성했다.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성을 더해 가치가 높다.
1000원 지폐 그림 '계상정거도', 위작논란에 휩싸이기도
진적첩 첫면에 담긴 '계상정거도'는 1000원짜리 화폐 뒷면을 장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계상정거도는 '물러나 시냇물 흐르는 곳 위에 자리를 잡고 고요하게 산다'라는 뜻이다.
계상정거도는 1746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퇴계가 기거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하던 도산서당의 모습을 담았다. 진적첩에 수록된 네폭의 겸재 정선 그림 중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계상정거도는 지난 2008년 이동천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박사가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이란 책을 내며 위작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동천 박사는 여전히 계상정거도를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2008년 7월 과학감정을 실시해 휴대용 형광X선 분석기로 낙관과 지질 등을 조사, 진품으로 결론을 내렸다.
진적첩은 내용 14면과 앞뒤 표지 2면으로 구성돼 있다. 첫면의 계상정거도에 이어 네면에 걸쳐 퇴계의 '회암서절요서'가 배치돼 있고 두면에 걸쳐 우암 송시열의 발문 두편과 정만수(겸재 정선의 차자)의 부기가 쓰여 있다.
다음 세면엔 겸재의 그림인 '무봉산중도'와 '풍계유택도' '인곡정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이병연의 칠언절구와 임헌회의 후식, 김용진의 제서가 각각 한면씩 구성돼 있으며 이강호의 발문이 별지로 들어가 있다.
‘계상정거도’
한국 고미술 통한다…글로벌시장서도 재평가
글로벌시장에서도 한국 고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가 최근 연 뉴욕경매에서 18세기에 만들어진 한국 도자기가 36억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 록펠러플라자에서 9월 정기경매를 통해 아시아 고미술전을 가졌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미술이 다수 출품된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다섯발톱용문청화백자'였다. 숙종 때 왕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자기는 치열한 경합 끝에 321만8500달러에 낙찰됐다. 일본인 소장가가 경매를 의뢰한 작품이다.
로버트 모리 하버드 아트뮤지엄 아시아담당 헤드는 "코발트블루 톤의 용무늬가 생동감 있는 붓터치로 완성됐다"며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용무늬 도자기 중 이정도 크기는 상당히 희귀하다"고 평가했다.
뉴욕에서 낙찰된‘다섯발톱용문청화 백자’
한국 고미술 최고가 기록은 64억
국내외를 통틀어 한국 고미술 중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1996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철화백자운용문항아리'다. 17세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당시 841만7500달러에 팔려 당시 환율로 64억원에 낙찰됐다.
뒤를 이어 2008년 12월 샌프란시스코 본햄스 경매에서 '청화백자송하신인문 항아리'가 418만4000달러에 팔렸고 '청화백자운용문항아리'(18세기전반)는 2011년 3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389만500달러에 팔렸다.
4번째로 비싼 값에 팔린 작품은 199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팔린 '청화백자보상당초문접시'로 308만2500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당시 환율로 38억원에 달해 최근 낙찰된 '다섯발톱용문청화백자'(321만8500달러, 34억원)에 비해 높은 값으로 평가된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고미술작품 순위는 이번에 낙찰된 '퇴우이선생진적첩'과 뒤를 이어 '백자청화운룡문호'(2011년 3월 마이옥션 18억원) '금강산와유첩'(2010년 3월 옥션단 17.1억원) '철화백자운용문항아리'(1996년 서울옥션 16.2억원) 순이다.
중국에선 고미술 열풍…한국 고미술 활력 되찾을까
중국은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특히 중국 부호들의 고미술 사랑은 놀라울 정도다. 경쟁적인 호가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다.
지난 2010년 6월 중국 폴리옥션에서 북송시대 황팅지엔의 서예작품이 77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2010년 한국 미술시장 전체 거래규모가 8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가격이다.
지난해엔 치바이스의 회화작품 '송백고립도'가 718억원에 낙찰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치바이스는 피카소를 누르고 지난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팔린 작가 기록도 갈아치웠다.
한국 고미술시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불황을 겪고 있다. 근현대미술이 재조명 받으며 활발한 거래가 이뤄진 것에 비해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경매업계에선 이번에 전해진 최고가 기록 경신을 계기로 고미술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장기투자를 위해 고미술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고미술시장은 확실히 바닥을 쳤다"고 평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