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희씨(42)와 조평강군(11)은 모자(母子) 사이다. 이들은 여느 모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 휠체어가 그들의 다리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봉구 창동에 있는 15만원짜리 월세에서 살았다. 불과 3평짜리 방이었다. 휠체어는 자치단체가 지원해줬다. 하지만 방안이 좁다보니 가끔 휠체어를 방밖에 두기도 했는데 이것을 누군가 훔쳐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머니인 박씨는 지체장애 2급이고 아들인 조군은 뇌병변장애 1급이다. 대표적인 장애가 이것이지 다른 장애들까지 합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박씨는 강직성 뇌성마비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한다. 때문에 근로할 여건이 못 된다. 이들의 생활비는 국가가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지급하는 국가보조금 100만원이 전부다. 반면 빚은 600만원이다. 병원비는 지원을 받았지만 생활비가 없어 최근 200만원을 더 빌렸다.
 
이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볼일을 보는 일이다.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한다. 화장실 앞에 가면 두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들에게 계단은 그 어떤 장벽보다도 높았다.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사랑의 리퀘스트'였다. 두 단체가 공동으로 주거지원금 1500만원을 모금해줬고 박씨는 이 모금액을 통해 지금의 13평 임대아파트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진_류승희 기자  
 
◆장애보다 더 큰 아픔은 '가정폭력'
 
조군은 대화가 서투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또래 친구들은 개그프로에 나오는 유행어를 따라할 정도지만 조군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겨우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다녀온 조군은 방 한쪽 벽에 기대고 앉아 눈만 꿈뻑거렸다. 가끔 신음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면 조군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SOS'다. 인터뷰 중간 한쪽으로 쓰러지는 조군을 바로 앉히는 행동을 반복해야 했다.
 
조용하던 조군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것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엄마인 박씨가 조군을 달래보지만 그저 말뿐이다. 불과 2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박씨 역시 몸을 움직여 아이를 달래줄 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조군의 아버지 역시 지체장애 3급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일삼았다는 점이다. 한번은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길질과 주먹질, 심지어 목발로 박씨를 구타했다. 박씨가 문턱의 깨진 타일을 밟아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경찰에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가정문제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어요. 그래도 도움을 청할 곳은 경찰밖에 없잖아요. 아마 그쪽 경찰서에서 제 사건기록이 가장 많이 접수됐을 겁니다."
 
박씨는 폭력과 폭언의 스트레스로 두번이나 유산했다. 그 뒤에 어렵게 가진 아이가 조군이었다. 임신을 하고 한번도 병원을 가지 못했던 박씨는 임신 8개월째 조군의 아버지에 이끌려 병원을 가게 됐다.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행복은 순간이었다. 조군의 아버지는 박씨가 가진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박씨는 조군을 낳았지만 처음엔 조군의 이상징후를 알지 못했다. 가정폭력을 피하느라 미처 조군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형부가 조군의 이상행동을 수상히 여겨 병원에 데려가기 전까지 가족들은 조군이 뇌병변장애와 언어중복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조군의 장애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남편의 가정폭력은 계속됐다. 2006년 박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을 도망쳐 나와 병원으로 피신했다. 병원 복지사들의 도움으로 병원비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3년여의 별거 기간 동안 협박과 모욕에 시달린 끝에 2009년 어렵게 이혼에 합의했다. 그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창동의 월셋방으로 거쳐를 옮겼다.
 
 
사진_류승희 기자   
 
◆희망 홀씨가 낳은 작은 실천 '기부'
 
박씨와 조군은 가끔 백화점으로 간다. "없는 형편에 무슨 백화점을 다니냐"고 묻자 "휠체어 두대를 끌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백화점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반식당은 턱도 높고 입장도 어렵거니와 잘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점은 이동이다. 대부분의 장애우가 겪는 문제지만 박씨는 자신이 타고 있는 휠체어 외에 조군의 휠체어까지 컨트롤해야 한다. 그러니 이동하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다. 기부단체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물품 구입에 관한 내역을 발송해야 한다. 물품별 견적서와 영수증을 매번 팩스로 보내야 하는데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몇만원짜리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금액이 교통비로 들어가는 게 번거롭다. 국가보조금 100만원 중 이들이 교통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월 30만원이다.
 
박씨는 그동안 많은 후원을 받았다. 방송을 통해 여러번 사연이 소개되면서 병원에서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래서 박씨는 후원의 고마움을 잘 안다. 항상 조군을 앉혀놓고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네가 크면 꼭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면서 살라"고 이야기한다.
 
없는 살림에 박씨는 매달 3만원씩 중국 아동을 후원하는 작은 실천을 하고 있다. 기부관련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어렵게 사는 9살짜리 중국 여아의 사연을 본 조군이 '후원하자'고 졸라서 하게 됐다고 한다.
 
"평강이에게 '너 돈 있어?'라고 물어보니 대뜸 '응'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우리는 몸이 불편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거든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기도 해서 후원하게 됐죠. 우리도 지금까지 후원을 받아서 살았어요. 그동안 후원해주신 이모들(자원봉사자)과 기부자 분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박씨에게 전해진 희망의 씨앗이 다른 어려운 이웃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기대해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문의 : 희망나눔센터 전화(1588-1940)>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