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중개업소의 말만 믿고 선뜻 투자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한씨가 투자한 이 아파트는 단기 차익은 물론 집값의 80%에도 미치지 않는 '급급매'로 내놨지만 매수자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한씨는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집값은 떨어지는데 금리는 오르고 있어 이자 납부하기에도 벅차다"면서 "투자 목적으로 구매를 했지만 매수자가 없어 집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아파트가 위치한 성복동 이외에도 인근 중개업소마다 매물을 내놨지만 거래가 안돼 현재 경매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투자 목적으로 구매를 했지만 집값 하락과 높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한씨의 아파트는 급급매에도 불구하고 '깡통 매물'로 취급되고 있다.
한씨의 경우처럼 내집마련과 재테크를 목적으로 막대한 금리를 떠안고 대출에 나섰던 주택 보유자들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장만한 이들 대다수가 원리금은커녕 이자조차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평균 50%로 집계됐지만 전세보증금을 합칠 경우 실제 LTV는 71%를 넘어서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생활자금을 위한 가계부채의 경우 충분한 상환이 가능한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구매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원금 대비 높은 이자를 상환하는 만큼 한씨와 같은 직장인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이 살아나 탄력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웃돈(프리미엄)이 형성되는 시세라면 부채에 대한 부담도 적겠지만 시세하락이 심화되고 있는 매물을 높은 이자를 통해 구매한 서민 대출자들의 가계부채 부담은 높을 수밖에 없다.
- 은행 문턱 높인 정부·금융권의 '이중잣대'
지난해 말 전국 가계부채는 900조원을 넘어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2월 말 기준 912조9000억원을 찍었지만 순수 금융권 가계대출(LTV포함)을 제외한 카드, 여신 등을 추가하면 1000조원대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무엇보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제1금융권을 제외한 비금융권 주택담보대출 및 기타대출이 동반 상승하면서 작년 4분기부터 전년 동기 대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지난해 말 830조원을 돌파했으며 이 중 가계대출 잔액은 총 642조6900억원으로 이중 절반 수준인 392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이는 정부와 금융권의 부동산 부양책에 따른 서민대상 대출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K은행 여신담당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이 서민들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지나치게 확대하면서 천문학적 수치의 자금이 빠져나갔다"면서 "하지만 부동산 불황과 거래가 중단되는 한계에 부딪치면서 은행 문턱을 정부가 나서서 높였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부동산 부양정책을 펼치며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확대했던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는 문제없다면서도 10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를 거론하며 은행 빗장을 걸어 잠궜다는 것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책실패를 정부가 인정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 LTV 늪에 빠져 '깡통 매물' 급증
"부동산 시장 좋을 때 단기차익 노릴 생각에 대출 받아 매입한 집이 이젠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집을 내놔도 찾는 사람이 없는데다 눈만 뜨면 곤두박질치는 집값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주택담보대출 수요자)
부동산 경기 불황의 기폭제로 작용됐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한번 가라앉은 시장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는 국내 부동산시장을 초토화시킬 만큼 위력을 과시했다. 주택경기 장기 불황의 여파는 소위 '한탕', '단기차익', '프리미엄(웃돈)' 등을 기대했던 과다 대출 수요자들을 순식간에 '하우스푸어'로 전락시켰다.
이런 이유로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했던 주택구매자들은 시장 악화로 잇따라 헐값에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매수세가 증발하면서 집값이 하락을 반복하는 기형적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골칫덩이로 전락한 집을 급매 처분하거나 경매에 넘기더라도 당초 대출금을 충당하지 못해 집을 팔아도 여전히 빚을 떠앉아야 하는 소위 '깡통 매물'이 최근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LTV 한도(시세의 60%)를 넘어 집을 매각해도 대출금 완납이 불가능한 가구는 어림잡아 39만5000가구에 이를 것"이라며 "이들 가구의 부채비율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16.9%, 48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지만 집계가 어려운 제2금융권을 감안하면 LTV 한도 초과 대출 규모는 그 이상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문제는 그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있고 최근 2~3년 새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주택을 소유한 집주인과 더불어 전세 세입자들 역시 적지 않은 부담에 노출되고 있다.
서울·수도권 전세가격은 지난해 11% 상승한 데 이어 올해 1~9월 역시 1.1%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소액의 LTV만 있어도 전세금을 비롯한 부채가 주택가격에 근접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LTV 비율이 70%를 상회할 경우 집을 급매 또는 경매 처분하더라도 전세금과 대출액을 받쳐주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양산되고 있어 전세세입자들의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1번지 채훈식 실장은 "전세금과 담보대출 비율이 70%를 초과하게 되면 전세 세입자들의 보증금 환급이 위험할 수 있다"면서 "LTV가 70%를 초과하면 위험주택으로 분류되고 있어 최근 전세세입자도 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주택은 회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