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단수이의 번화가 라오지에를 걷다 보면 문전성시인 빵집을 볼 수 있다. 단수이 여행자라면 으레 방문하는 ‘대왕카스테라’ 가게다. 일반 카스텔라보다 달지 않고 보들보들 촉촉한 식감의 카스텔라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어 1년 남짓한 기간에 전국에 400여개의 매장이 생겼다.
필자도 대왕카스테라를 사서 집에 가져간 적이 있다. 가족이 좋아해 한참 줄서서 산 것이라며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한 종합편성채널의 먹거리 고발프로그램에서 대왕카스테라를 다룬 이후 순식간에 불량식품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머쓱해졌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반죽할 때마다 식용유를 700mℓ씩 들이붓는 장면이 나왔고 싸구려 분유에 화학첨가제를 대량 첨가한다고 보도했다. 방송을 보고 분노한 소비자들의 댓글이 올라왔고 매출은 10분의1로 뚝 떨어졌다.
◆과장된 보도, 영세업자 ‘피눈물’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보도였다. 업체 측은 다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1인분으로 계량하면 시중 제과제빵에 사용되는 양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빵을 만들 때 쓰는 유지로는 버터, 마가린, 쇼트닝, 식용유 등이 있다. 식용유보다 쇼트닝을 더 많이 쓸 텐데 쇼트닝을 쓰는 것은 괜찮고 식용유를 쓰는 것은 안된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싸구려 분유? 아이에게도 분유 먹이지 않는가. 분유 앞에 ‘싸구려’라는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니 업체는 부도덕한 기업이 된 것 같다. 이런 식의 방송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방송에서는 성분분석 결과 대왕카스테라가 일반 카스텔라보다 5~8배 수준의 지방이 검출됐다며 건강에 나쁜 식품이란 이미지도 부각시켰다. 하지만 유명 대기업 카스텔라 제품 중 대왕카스테라보다 더 많은 지방이 들어간 제품도 있다. 기름 함유량이 낮은 카스텔라는 제조 시 설탕을 많이 넣어 당과 열량이 높다. 대왕카스테라에는 설탕이 적게 들어가 건강상 단 것을 기피하는 사람이 선호할 수 있다. 설탕을 선택하느냐 지방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대왕카스테라와 관련 “먹어보면 한번에 많이 못 먹는다. 즉 실제 섭취하는 식용유는 많지 않다”며 “못 먹을 음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보도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어떤 사안이든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부정적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되면 그 이미지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대왕카스테라도 방송을 통해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자 매출이 뚝 떨어졌고 이후 방송내용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매출이 회복되지 않았다.
필자가 대왕카스테라를 구입했던 점포도 폐업하고 다른 점포로 바뀌었다. 전국적으로 생긴 대왕카스테라 가게 대부분은 서민이 운영한다. 수억원의 창업비용이 필요한 유명프랜차이즈 빵집에 비해 수천만원이면 창업할 수 있어 소자본인 서민이 주로 뛰어들었다. 폐업하면서 발생한 수천만원의 손실은 서민에게 피 같은 돈이다. 과장되고 왜곡된 보도로 인한 피해가 서민에게 돌아간 셈이다.
◆수년 만에 무죄판결, 그러나
국민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불량식품 사건은 ‘시체 부패방지용 포르말린으로 버무린 통조림’이다. 1998년 7월 골뱅이와 번데기 통조림업체 대표는 통조림에 포르말린을 첨가한 혐의로 구속됐다. 무더기 반품이 들어왔고 통조림업계 전체 매출이 급감했다. 사채업자가 몰리면서 기소된 식품업자들은 부도위기에 처했다. 검찰은 드러난 증거를 바탕으로 의심을 넘어 유죄의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식품에 첨가된 양의 포르말린은 자연상태에서도 존재하며 인체에 유해한지 확인된 바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다시 항소했다. 법정공방은 2년 가까이 지속됐고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무죄라며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 대표들이 감옥생활로 탈진하고 통조림업체가 줄도산한 후였다. 만신창이가 돼 재기가 불가능했다. 검찰에서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수사결과를 언론이 그대로 보도한 관행의 결과다. 언론이 피의자 측 입장과 과학적 근거자료를 균형있게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많은 가정을 파탄으로 내몰았다며 뒤늦은 비판이 나왔다. 자극적인 보도에 분노했던 사람들 중 다수는 훗날 피의자가 무죄로 밝혀진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4년에는 ‘쓰레기만두’ 사태가 터졌다. 검찰은 무말랭이 만두소로 만두를 만들어 유통한 업자들을 구속했고 식약청은 불량 만두소를 이용한 생산업체 25개 명단을 공개했다. TV 뉴스를 통해 쓰레기더미에 무말랭이가 너저분히 쌓여있는 장면이 공개되자 국민의 분노는 커졌다.
당시 언론은 “일부 만두업체가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는 상황에서 도주 혐의자를 검거해 사건의 전모를 밝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국 130여개 만두제조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단무지공장 매출도 70%나 급감했다. 사건의 진위가 법정에서 가려지기도 전 대외적으로 한국식품의 이미지가 추락하고 일본에서 한국산 만두 수입을 전면금지하는 등 수출에도 타격을 입었다.
쓰레기만두업체로 보도된 한 업체의 사장은 “우리 만두는 절대로 쓰레기가 아니다. 제발 믿어달라”고 절규하다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국민은 그의 절규와 죽음에서조차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쓰레기 단무지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훗날 대부분의 만두업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실제 공장을 찾은 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고 대부분의 언론은 경찰이 제공한 화면에서 필요한 부분만 짜깁기해서 내보냈다. 경찰이 쓰레기장의 썩은 무를 일부러 박스 위에 올려놓고 비디오로 찍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결국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대부분 영세업체가 도산했고 수많은 업계 종사자가 직장에서 물러난 다음이었다.
◆대기업도 누명, 수천억원 벌금까지
영세업체뿐 아니라 대기업의 운명도 왜곡된 보도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 1989년 11월 한국 라면업계 선발주자인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었다. 국민 애호식품인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사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삼양라면에 들어간 소기름은 분류상 공업용이지만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 식용기름이었다. 삼양식품이 수입해 사용하던 우지는 미국 우지 분류등급 12단계 중 2~3등급이었다. 원산지 미국에서는 내장이나 사골 등을 먹지 않아 우지를 비식용인 공업용으로 구분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내장과 사골을 먹기 때문에 당연히 식용이다. 당시 우지는 팜유보다 값이 비싸지만 맛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라면제조에 사용했다. 미국에서는 미역이나 다시마 등의 해조류도 바다에서 나는 비식용 잡초로 간주하듯 나라마다 식용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그럼에도 미국의 관점에서 우지를 해석해 누명을 씌운 것이다.
삼양은 백억원대의 라면 재고를 폐기 처분했고 수천억원대 범칙금도 부과받았다. 식물성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한 거의 모든 라면업체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8년이나 이어진 재판에서 삼양식품은 결백이 입증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억울함에서 벗어났어도 시장에서 추락한 인지도는 회복하지 못했다. 그 사건으로 모든 라면회사가 면을 튀길 때 팜유를 함께 사용한다. 기름야자열매에서 추출한 팜유는 다른 식물성유지에 비해 혈관건강에 좋지 않은 포화지방이 많이 함유됐지만 값이 싸고 가공성이 좋아 다른 가공식품 제조에도 널리 사용된다.
◆소수의견 듣고 균형 보도해야
대표적인 컵라면 제품들은 100g당 열량 435.9 kcal, 지방 15.8g, 포화지방 6.36g, 나트륨 1472.74 mg을 함유한다. 반면 종편채널이 방영한 대왕카스테라 성분검사 결과 100g당 평균적으로 칼로리 293.8 kcal, 지방 14.3 g, 포화지방 3.20 g, 나트륨 213.82 mg이 들어있어 오히려 컵라면보다 건강에 덜 해롭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사회·정치·경제적 이슈에 관한 잘못된 정보도 빠르게 확산된다. 한번 잘못된 정보에 사람들이 휘둘리면 교정이 쉽지 않다. 어떤 정보를 취득하고 어떤 정보 위주로 찾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생각의 양극화가 심해져 갈등이 격화된다.
부정적인 내용의 보도를 볼 때는 반대쪽 주장을 담은 이야기도 찾아보면서 생각의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다수의 생각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므로 소수의 생각도 살펴봐야 한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성을 믿을 수 없는 고기’로 다수의 군중이 생각했다. 심지어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광우병 사태 이후 9년이 흐르고 미국산 소고기는 수입산 1위에 다시 올랐다. 지금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 없이 유명 스테이크전문점 등 여러곳에서 사용하며 수요가 크게 늘었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