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
김병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꽁지머리’, ‘골 넣는 골키퍼’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비록 지금은 은퇴한 축구선수지만 K리그 통산 706경기 출전기록을 세운 ‘살아있는 전설’이다. 개성 강한 그의 캐릭터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증거다.
갑작스런 한파가 찾아온 지난달 20일 경기도 구리시 롯데아울렛 옥상에 위치한 ‘김병지 풋살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이른바 ‘롱패딩’으로 불리는 벤치파카에 축구화를 신은 모습을 예상했지만 짙은 회색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의 손은 커다랗고 두툼했다. 수많은 경기에서 공을 수도 없이 막아내며 단련된, 그래서 레전드로 불리는 골키퍼의 손은 남달랐다. 게다가 선수시절의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 대신 편안한 동네 형 같은 느낌도 인상적이었다.
◆인생의 전환점
“축구는 제 인생입니다. 10세에 시작해 46세까지 선수생활을 했으니 축구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도 축구와 함께 살고 있으니 축구는 제 인생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팀 감독의 권유로 육상에서 종목을 바꾼 게 첫번째 전환점이다. 이후 지난해 여름까지 축구선수의 삶을 살아왔으니 그의 인생에서 축구를 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로활동은 20대 초반이던 199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시작했고 데뷔 3년 만인 1995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는 축구를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국가대표가 됐을 때와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를 꼽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게 소원이었던 그이기에 더욱 특별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두번째 전환점은 월드컵이다. 1998년에는 꿈에 그리던 프랑스월드컵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펼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4년 뒤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2001년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고 간 뒤 상대에게 빼앗긴 사건은 아직도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메뉴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침착한 이운재를 중용했다.
“의도했던 바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어요. 변수가 실수로 이어진 거죠. 지금이면 히딩크 감독과 잘 풀었을 텐데 당시엔 자만에 빠졌던 시기여서 더 많은 것을 잃었던 것 같아요.(웃음) 고비였지만 긴 선수생활을 놓고 보면 많은 가르침을 얻었어요. 한창 활동할 당시만 해도 공격형 골키퍼가 드문 시기였는데 오히려 요즘엔 골기퍼의 길잡이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거죠.”
그는 축구를 하는 매 순간이 힘들었다고 회고하며 축구의 길에 들어선 자녀들에게 이 같은 점을 강조한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감동을 주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남보다 더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저녁 스케줄을 일절 잡지 않았다. 현역시절 몸무게 78kg을 유지했고 은퇴 후에도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인생 2막의 시작
“2015년부터 홍명보 장학재단의 감사를 맡아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축구 꿈나무를 발굴하고 장학금 수여 대상을 눈여겨봅니다. ‘셰어 더 드림’ 자선축구대회는 매년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올해는 12월19일 야구장인 고척돔에서 열려요. 자선경기를 통해 모은 후원금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큽니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셰어 더 드림’ 자선축구대회는 홍명보 이사장이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했고 김병지는 대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그는 직접 운영하는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과 함께 재능기부는 물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7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난달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현재 골키퍼 지도자 1급, AFC(아시아축구연맹) 지도자 1급을 보유했다. 또 김병지 축구클럽은 회원이 700여명인데 아이들은 물론 사회체육인도 많다.
“생활체육환경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접근성과 활용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도심에 사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할 시설, 기후와 관계없는 실내시설도 필요하거든요.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는 풋살이에요. 축구에 비해 좁은 공간,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축구 기본기를 배우기에 유리하거든요. 축구강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관심이 뜨겁죠. 분명 우리나라 축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유소년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06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시설의 필요성을 느꼈다. 은퇴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고 결국 지난 9월 롯데와 함께 ‘김병지 풋살파크’ 2곳을 오픈했다.
제2, 제3의 김병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결과는 나중에 나오는 만큼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되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지는 지난달 19일 교통사고를 당했고 당시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인터뷰와 시상식까지 참석했다. 하지만 다리 마비증세로 22일 정밀검사 후 허리디스크 파열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입원, 28일에 수술했고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이다. 당분간 아이들에게 킥을 가르칠 수 없다. 그간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철인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나 갈깃머리 휘날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8호(2017년 12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