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12시 서울 종로소방서 대원들이 출동하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점심이요? 굶어도 괜찮아요."

지난 26일 낮 12시 서울 종로소방서. 기자가 취재를 하러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사이렌이 '위~잉' 울렸다. 화재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35도가 넘는 찜통에서 소방대원 8명의 전력질주가 시작됐다. 민원업무를 보고 있던 대원까지 포함해 모든 대원이 차량에 탑승했다. 이들이 탑승한 뒤 출동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0초가 넘지 않았다. 

곧바로 위쪽에서 한 대원이 내려왔다. 출동한 대원들을 대신해 근무를 하려는 듯했다. 이곳 저곳 둘러보는 기자의 태도에 대원은 "무슨 일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소방관을 취재하러 왔다"고 답하자 이 대원은 "(출동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급하게 전화를 받고 컴퓨터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에서 점심시간 소방서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인데 식사 안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소방대원 "굶어도 괜찮다"고 답했다. 이곳에 온 뒤 2분도 되지 않았지만 소방대원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여유란 없었다.

26일 낮 12시 서울 종로소방서 대원들이 출동하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대화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자 다른 소방차량들도 어디론가 출동하고 있었다. 직접 도로에서 주위 차량을 살피는 대원 외에는 모든 대원이 차량에 탑승한 상태였다. 

한가지 눈에 띄었던 것은 소방차량 간의 거리였다. 우연이라 하기엔 차량 간의 간격과 속도가 일정했다. 급한 출동이었지만 오차 없이 거리를 유지하고 출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수백번도 더 연습한 듯 출동하는 소방관들의 모습도 모두 똑같았다. 

무더운 날 두꺼운 옷을 입고 신속하게 출동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더울까. 빠르게 출동하기 위해 몇번을 연습했을까.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냉면 먹을까?"라고 대화하는 길 건너 시민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소방서 앞은 조용해졌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이 해맑게 웃으며 거리를 채운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26일 서울 종로소방서 구내식당에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조용해진 소방서 안을 돌아보다 문득 '컵라면을 먹는 소방관' 사진이 생각났다. 출동한 대원들은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 정말 컵라면을 먹을까. 출동하지 않는 대원들은 시켜먹지 않을까. 다양한 궁금증이 생겨 소방서 구내식당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근무복으로 가득할 것이란 기자의 예상과 달리 식당에서 소방대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식권 구매기부터 식당 내부까지 대부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내식당 이용 안내문에는 "식당은 직원전용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우리 구를 방문하는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고 써있었다. 

구내식당 근처 야외 쉼터에서도 소방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음료수 캔 하나 없는 바닥을 바라보니 뭔가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종로소방서 쉼터 모습. /사진=강산 기자

구내식당과 쉼터에 대원들이 없는 이유는 뭘까. 민원처리실 앞에서 만난 이푸름 대원(남)으로부터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원들은 보통 어디에서 식사하냐'고 묻자 이씨는 "주로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며 "출동과 상관없이 대부분 식사는 소방서 안에서 해결하는 편이다. 안에서 상시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식사시간은 보통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이씨는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식당에 가서 먹으면 신고(사이렌)를 들을 수 없어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신속히 식사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또 "구내식당은 오후 1시에 끝나기 때문에 아예 못 먹을 때도 있다. 먹다가 중간에 출동할 때도 많아 굶거나 간단한 음식으로 떼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소방관으로서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하지만 시민을 지키는 소방관으로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뿌듯하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소방서 차량 주차장에 소방대원의 신발이 떨어져 있다. /사진=강산 기자

책에 써있어야 할 모범답안이 현직 소방대원의 입에서 나와 뭔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코에 맺힌 물방울과 땀으로 범벅이 된 이씨의 등이 이들의 현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자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뒤 어디론가 급히 뛰어갔다. 또 출동 사이렌이 울린 듯했다.

그에게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채로 기자도 밖으로 나왔다. 차량 주차장에 나오자 신발 한짝이 놓여 있었다. 주인 없이 놓여 있는 신발이 쓸쓸하기보다는 든든해 보였다. 갈아신은 신발조차 차량에 싣지 못했을 정도로 다급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