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캘리포니아 휴양지의 토스카나풍 별장. 하객 대상 토론회에 숲속 스파 피로연까지, 며칠에 걸쳐 이어질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랑은 24세의 AI 전문 헤지펀드 설립자, 신부는 AI 선두 기업 앤스로픽 CEO의 비서실장이다. 신부가 주문한 콘셉트는 '유럽식 정원에 특이점 직전의 분위기'였다. 미국 경제매체 포천은 이들을 'AI 파워 커플'이라 불렀다.

같은 시각 신랑은 자신을 스타로 만든 펀드가 보유한 상장 주식 전량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었다.
한달 전까지 60조원이 넘는 펀드를 운용하던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7월 폭락의 클라이막스에 펀드가 가진 대부분의 상장 주식을 팔아야 했다. /사진=아셴브레너 링크드인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신랑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2024년 인터넷에 공개한 165쪽짜리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제목은 '상황 인식(Situational Awareness)', 그가 세운 펀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논문도 보고서도 아닌 이 글은 공개 직후 실리콘밸리의 필독서가 됐다.


석 달 뒤 그는 펀드를 세웠다. 운용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컬럼비아대 19세 수석 졸업, 오픈AI 연구원 출신이라는 이력 앞에서 돈은 쉽게 모였고 성과가 남은 논란을 잠재웠다. 대표 보유 종목이던 미국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는 1년여 만에 40배 넘게 올랐다. 2억2500만달러로 시작한 펀드는 2년도 안 돼 450억달러(약 62조원)가 됐다. 저명한 창업자들과 월가의 운용사들까지 돈을 맡겼고, 개인투자자들은 분기마다 나오는 공시를 뒤져 그가 산 종목을 따라 샀다.

AI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은 펀드의 구조는 허술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에 '몰빵'했다. 여기에 4배의 레버리지를 썼다. 포트폴리오가 25%만 빠져도 '녹는' 구조다. 무엇을 들고 있는지는 분기마다 공시로 드러났고, 어느 종목을 흔들면 그가 팔 수밖에 없는지 시장은 알고 있었다.

7월 들어 반도체주가 꺾이자 자금을 대주던 투자은행들이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그는 담보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 종목들을 던졌다. 그중에는 SK하이닉스도 있었다. 버티지 못한 그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인수자는 헤지펀드 시타델, 시가보다 10% 넘게 싼 값이었다.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태평양을 건넜다. '삼전닉스'가 시총 절반을 차지하는 코스피는 27거래일 만에 39% 하락하며 IMF 외환위기 때 세운 기록을 깼다. 펀드 청산이 마무리된 것은 코스피가 저점을 찍은 날 밤이었다. 이튿날 지수는 18% 가까이 반등했다.

두 달 앞서 한국 정부는 개인에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2배로 걸 수 있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허용했다. 내건 명분은 해외로 나간 자금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월 인터뷰에서 "나스닥에서는 가능한 것을 왜 국내에서는 못 하게 하느냐"고 한 뒤 속도가 붙었다. 금융위원회 내부 문건상 하반기였던 출시는 5월 27일로 앞당겨졌다.

시장이 폭락하자 정부는 '대책'이라는 이름의 '규제'를 내놨다. 표적은 그렇게 서둘러 도입한 ETF였다. 신규 상장은 중단됐고 개인 예탁금은 3000만원으로 올랐다. 시행일은 지수가 바닥을 찍은 다음 날이었다. 고점 대비 4분의 1 토막이 난 상품을 들고 있던 개인은 반등 국면에서 추가 매수 길이 막혔지만 '대책'은 강행됐다. 6월 한 달 외국인 순매도가 49조원으로 역대 최대였는데도 시가총액의 1%도 안 되는 ETF가 하루아침에 사달의 범인이 됐다. 지수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급했다.
정부 부양책이 실패한 뒤 1990년 10월 깡통계좌 1만3000여 개가 일괄 정리됐다. 당시 지면은 "약한 투자자만 희생시킨꼴"이라고 적었다./사진=서울경제신문 1990년 10월 10일자

대책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정부가 지수를 올리고 지킨다는 명제는 성립할까. 1세대 증권맨 윤재수가 『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에 1989년의 기록을 남겼다. 4년 만에 일곱 배가 오른 코스피가 그해 3월 1000을 찍고 흔들리자 노태우 정부는 한국은행 발권력까지 끌어다 투자신탁회사에 자금을 대고 주식을 사들이게 했다. 지수를 떠받치기 위해서였다.

시장은 정부가 개입할수록 더 내렸다. 정부가 무리수까지 동원한다는 것 자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부가 매수호가를 깔아주자 투자자들은 앞다퉈 팔았다. 매도가 매도를 불렀고 정부는 결국 손을 들었다. 지수는 1992년 500선이 무너진 뒤에야 방향을 바꿨다. 그 전에 1만3000여 개의 '깡통 계좌'가 일괄 정리됐다. 코스피가 1000선 박스를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5년이다.

삼성전자의 지난 분기 영업이익은 전 세계 1위다. 그 뒤를 SK하이닉스가 쫓는다. 원칙 없이 흔들리고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하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쓸 카드가 사라진다는 정부의 '상황 인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로벌 대장주가 상장된 시장의 감독관이 갖춰야 할 필수 교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