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한 독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중고거래 환불사기로 수십만원을 잃은 피해자였다. 당시 기자에게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던 피해자는 뜻밖에도 이런 말을 남겼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렇다고 돈을 찾아줄 거라 기대하진 않아요." 피해금액이 작아 경찰이 별 관심을 갖지 않을 거란 설명이 뒤따랐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경찰이 해결해줄 거라 믿지 않는 시민이 과연 그 피해자일 뿐일까.
취재를 시작하자 경찰은 의욕을 보이는 듯했다. '수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은 "조만간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한 뒤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통화 말미에 이런 요청을 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기사에 꼭 넣어주세요."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피해자에게 다시 연락했다. 수사 진척이 있냐고. 피해자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과 관련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으니 낙담도 없어 보였다. 경찰이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그의 예측은 확신으로 변할 것이다. 그 확신들이 모여 평가가 된다. 현재 경찰의 신뢰도는 이런 시민들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경찰을 둘러싼 풍경은 낯설다. 아무리 '혐오의 시대'라고 하지만 경찰을 비하하는 일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 6월 올림픽공원 시위에선 일부 경찰관을 두고 '중국 공안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경찰을 향한 불신이 단순 불만을 넘어 공권력 자체에 대한 조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개인을 향한 혐오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경찰을 향한 불신을 일부 시민의 문제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장윤기 사건'은 경찰 신뢰도에 너무나 치명적이다. 그냥 부실수사가 아니다. 실수나 일탈을 넘어 경찰이, 경찰에 의해, 경찰을 위해 증거를 없애고, 사건을 조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경찰 가족이 피의자나 피혐의자인 사건은 45건, 피해자나 고소·고발·진정인인 사건은 72건 등 총 11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감찰 조사가 이뤄진 사건은 단 1건에 그쳤다. 다른 관서로 이송했거나 이송할 예정인 사건은 44건, 이송 여부를 검토하는 사건은 15건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7건은 이미 종결했거나 다른 관서로 이송하지 않았다. 이 사건들의 처리는 공정했다고 믿을 수 있을까.
경찰 가족이 연루된 사건을 별도로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는 점도 이번 전수조사에서 드러났다. 그간 담당 경찰이 제척 및 회피를 신청하지 않으면 조직 내에선 관련 사건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구조였다. 경찰은 다음 달부터 경찰 가족 사건을 다른 관서가 수사하도록 하는 상피제를 시행한다고 했다. 1945년 경찰이 만들어진 지 81년 만에 이런 문제를 알았다는 건가. 아마도 '장윤기 사건'이 없었다면 경찰은 가족들이 연루된 사건을 지금처럼 알음알음 처리하는 관행을 계속 이어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찰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은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과 맞물려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오는 10월2일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는 전면 금지된다. 그 대신 보완수사를 경찰에 '요구'할 수만 있다. 최대 2개월 내에 보완수사를 마쳐야 하고, 제대로 보완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검사가 판단하면 해당 사건을 상급 기관이나 다른 수사기관으로 보낼 수도 있지만,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면 이런 모든 보완 장치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권한은 법으로 부여할 수 있다. 신뢰는 더 많은 권한을 갖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권한으로 인해 조직의 실력은 냉정하게 평가될 것이다. 커진 권한에도 수사 공정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조직 신뢰도는 더 빠르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조직을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느냐다. 검찰이 그랬듯 자신의 성(城)에 갇힌 조직은 외부에 의해 강제로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조직의 투명성은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사가 늦어지면 왜 늦어지는지, 수사가 어려우면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이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예측을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바꿀 때, 경찰의 신뢰도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