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고려 금속활자로 인쇄한 증도가자/사진=뉴시스 박영태 기자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1997년 베를린에서 열린 G7 회담에서 한 말이다. 그의 간단한 이 말 한마디는 세계인의 상식을 뒤엎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동안 세계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세계최초로 개발했다고 배웠고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금속활자는 우리의 선조 ‘고려’에서 세계최초로 발명해 널리 사용했다.
고어 부통령의 발언 이후 20년이 흐른 지난해 6월28일. 영화 ‘직지코드’가 개봉했다. 우광훈 감독과 데이빗 레드먼 감독이 공동으로 2013년부터 4년 동안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바티칸 등 5개국 7개 도시를 찾아다니며 피땀 흘려 만든 영화였다.

내용은 제목에서 시사하듯 ‘직지’(直指)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됐는지를,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 최초라고 알려진(주장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5년)보다 68년 앞섰다는 사실을 <다빈치코드>처럼 파고들었다.


◆유네스코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

‘직지’는 고려 말에 국사를 지낸 백운 경한스님이 지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긴 제목의 책을 그의 사후 제자들이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이다. 상하 두권 중 하권 마지막 장에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글자가 찍혀 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주는 문구다.

이렇게 명확한 사실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것은 ‘직지’가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 대한제국 때 초대 주한프랑스공사를 지낸 플랑시 씨가 이를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갔다가 뒷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프랑스와 독일 및 유럽인들은 ‘직지’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철저히 부인해 왔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이미 1972년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했고 유네스코도 2001년 9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최초 인쇄물은 ‘직지’보다 143년 전, 구텐베르크보다는 221년 전인 1234년에 고려에서 인쇄된 ‘고금상정예문’이다. 하지만 이 인쇄본은 인쇄됐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실물이 전해지지 않아(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는 ‘직지’가 ‘세계최초 금속활자인쇄본’의 영예를 안고 있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성경' /사진=코베이 제공

하지만 독일과 유럽인들은 아직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세계최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고어 부통령의 말처럼 금속활자를 최초로 만든 것은 ‘코리아’(高麗)일지 모르나 실제 인쇄물을 만들어 정신·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쳐 종교혁명에 이르게 한 파급력을 발휘한 것은 구텐베르크라는 논리다. 또 코리아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로 어떻게 전달됐는지 과정이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도 댄다.
하지만 허드슨은 이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다. “구텐베르크에 의해 유럽식 인쇄술이 출현하기 전에 코리아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에 (독일과 유럽이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려면) 그 거증책임은 유럽의 인쇄술 발명이 완전히 독자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1000년 동안 인류 역사 바꾼 100대 사건 중 1위

카터도 구텐베르크가 ‘코리아’의 금속활자를 직접 보거나 인쇄기술을 누군가로부터 배웠다는 ‘직접전파’의 증거는 없지만(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코리아’의 서책을 입수해 보았을 ‘간접전파’의 정황증거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인쇄의 전제가 되는 제지술이 동아시아에서 서양으로 전파됐고 ▲화투·지폐·서적 등 일련의 인쇄물이 유럽으로 건너가 확산됐으며 ▲활자조판기술에 대한 지식이 중국을 방문한 수많은 유럽인에 의해 보고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무주정광다라니경·751년)을 보유한 것도 ‘코리아’일 정도로 한국은 인쇄술의 선진국이었다. 또 ‘직지’가 인쇄된 뒤 코리아에서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진보가 크게 일어났다.

이 거대한 진보는 중국의 글자 문화를 백성들 사이에 널리 보급하고 몽고에 의해 황폐화된 나라를 재문명화하려는 조선왕조의 강렬한 욕구 덕분이었다. 특히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서적을 신속하게 늘리기 위해 중국식 활판인쇄법을 개선하고 1403년 주자소(鑄字所)를 세웠다. 그 결과 3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서적이 이 주자소에서 인쇄, 간행됐다.

인쇄의 기반이 되는 조선의 제지술과 교육수준도 당시 세계 제일이었다. 18세기 조선 한지의 품질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북경에 파견된 선교사 피에르 레지는 “청나라 황궁의 모든 창호지와 벽지로 조선 한지를 쓸 정도였고 가장 비싼 가격에 팔려도 언제나 품귀상태였다”고 전했다. 조선의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은 115가구 당 한 개가 들어설 정도로 많았다. 지방 향교와 서울의 사학도 500~600개에 달했다.

중국에서 개발된 활판인쇄술을 받아들여 우리의 장인정신으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만들고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쇄본 ‘직지’를 보유하게 된 것은 패치워크(짜깁기) 문명의 살아있는 예인 것이다.

미국의 시사잡지 <라이프>가 2000년대를 맞아 ‘지난 1000년 동안 있었던 사건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대 사건’을 조사한 결과 1위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책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자 인류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종교개혁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직지’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다시 조사한다면 구텐베르크를 제치고 ‘직지’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고정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뀌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뜻 있는 곳에 열정이 살아나고 검은 장막에 쌓여 감춰지고 틀어진 역사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2호(2018년 8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