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에 따라 옛 동대문운동장을 허문 자리에 세워졌다. 2009년 현상공모 때부터 외국인에 유리한 공모방식과 작품선정으로 잡음이 일었고 몇몇 문제들은 2014년 개관 이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DDP는 건축적으로 꽤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1950~2016)는 이라크 태생의 영국인으로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 렘 콜하스에게 사사했고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건축가의 실력이나 건축의 완성도는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당대 최고였으며 3D기술로 설계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이자 이를 적용한 국내 최초의 공공건축물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그럼에도 자하 하디드의 DDP는 동대문의 역사성과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대문은 한양의 동쪽을 방어하는 문이자 조선시대 군복을 지어주는 집들이 밀집했던 지역으로 1905년 김종한 외 3인이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해 ‘동대문시장’ 상호를 등록하면서 국내 최초의 근대적 시장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6·25 이후 평화시장이 생기면서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양대 시장으로 발전했고 60년대 섬유산업의 발전과 함께 의류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후 노동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30여개의 패션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현대적 면모를 갖추게 됐고 2010년대 이후로는 한류와 함께 동아시아 패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DDP가 들어선 자리는 옛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곳으로 1925년 일제가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건설한 후 육상·축구·야구 등 서구식 운동경기가 소개됐고 1945년 해방 후에는 서울운동장으로, 1985년 서울종합운동장이 세워진 후에는 동대문운동장으로 불렸다.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단속으로 내몰린 노점상들이 동대문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철거 전까지 그 마지막을 함께 하기도 했다.
동대문은 6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삶의 터전이 돼 왔으며 지금도 한류와 함께 동아시아 패션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새로운 미래가 꿈틀거리는 공간으로서 서울시민의 일상을 대표하고 있다.

자하 하디드의 DDP는 한국적일까

자하 하디드는 DDP를 설계할 때 한옥과 서울 성곽을 모티브로 삼았다. 건물 밖 자연경관을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한옥의 공간구조, 산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가고 넓어졌다 좁아지며 도시를 휘감는 성곽의 공간 경험, 다이나믹한 흐름도 건축에 반영했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한국의 미와 공간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한옥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과는 달리 DDP 안에서 밖을 내다보거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은 거의 없다. 단지 건물 하단 공원에서 옥상까지 이어지는 경사진 잔디밭만이 건물의 내부와 외부, 높이와 넓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서울 성곽의 다이나믹한 흐름도 지붕과 좁은 벽으로 구성되는 건축공간의 특성상 등산보다 동굴탐험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 건축의 또 다른 특징인 온돌이나 사랑방, 마당, 장터 같은 공간, 여기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대해선 고민의 흔적조차 없다. ‘설계안이 가장 멋진 건축가’라는 평판처럼 시공 시 기술적 문제로 몇몇 부분들은 원안과 달라지기도 했다. 현대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건축이지만 너무나 미래적이기에 주변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간수문 ▲하도감 터 ▲동대문운동장 조명탑 같은 역사적 상징물들도 별다른 의미 없이 각자의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DDP가 그만의 역할과 기능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고 있지만 DDP에 입점한 디자인샵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체적인 상권을 형성하지도 못했고 주변 상권과의 연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멘디니·샤넬·구찌 등의 디자이너나 디자인브랜드, 백남준·앤디 워홀·키스헤링 등의 작품전으로 면피하고 있지만 그 이름과 위상에 비해선 소박하다.
물론 해체주의에 기능성이나 역사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해체주의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은 물론이고 그 이전의 모든 양식을 분석하고 해체한다. 양식과 이념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과 공간을 해석한다. ‘우리가 바라는 공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나아가며 전문가조차 이해 못 할 난해한 조형을 선보인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선 이해할 수 없기에 반박할 수도 없다. 최신설계·시공기술이 적용된 빌바오 뮤지엄이나 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선구적 건축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엄청난 규모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기에 그 효용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DDP가 동대문을 위한 건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만의 고유함과 화재성을 갖고 있지만 동대문의 역사·공간과 동떨어진 건축이 우리가 바라는 동대문의 경관이고 공간이었는지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DDP는 비전 없는 우리의 현재를 반영할 뿐…

하지만 이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DDP는 서울, 나아가 한국의 현재를 보여준다. 과거와 단절된 채, 무비판적으로 서구만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선진국을 따라잡았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선진국으로서 가져야 할 자신만의 고유한 비전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미,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필요가 제기된 지 50년이 지났고 디자인문화, 디자인담론을 외친 지 20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문제만 제기할 뿐, 우리만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정답’이란 것 자체가 허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답을 찾기 위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우리’ 자신만의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DDP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의 건축을 고민하는 의미에서 매년 가상의 DDP 설계공모를 열 수도 있다. 한국적 건축·공간 담론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고민하는 장(場)을 마련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저 텅빈 화려함 속에 우리의 삶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