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가 100년만에 복원돼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며진 광화문 현판도 함께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15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열어 복원한 광화문 월대와 현판을 국민에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함께 사전 신청한 국민 500명이 함께 자리했다.
최 청장은 기념식에서 "참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들었다"며 "오늘 기념식을 통해 광화문 복원이 갖는 상징성과 의미, 그간의 많은 노력이 국민 여러분께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특히 최 청장은 "광화문은 경복궁의 얼굴"이라고 전제하며 "오늘 월대와 현판 복원을 통해 광화문 복원 사업은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월대는 궁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돼 각종 행사가 열렸던 넓은 기단 형식의 대다. 월대 중앙에는 약 7m 너비의 임금이 다니던 길, 어도가 있었다.
광화문 월대는 조선 고종 연간인 1866년 조성됐다. 1865년 4월1일부터 1868년 7월4일까지 경복궁 중건 당시 기록을 담은 '경복궁 영건일기'와 1890년대 이후 전해진 사진 자료를 종합하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둘렀다.
일제 감정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에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알리는 조선물산공진회 행사를 추진했고 1923년 이후 전차 선로를 놓으며 월대는 사라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 2006년부터 광화문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월대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에도 설치됐다. 하지만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른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하지만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에 전차 선로가 놓여 변형·훼철의 수난을 겪었고 복원 이전까지 차로로 사용됐다.
광화문 현판은 원형대로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로 돌아온다. 지난 2010년 광복절 당시 흰색 바탕에 검정 글자로 쓰인 현판은 균열 등 부실 복원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경복궁의 흥례문과 근정문, 근정전 등의 현판은 모두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다.
문화재청은 "향후에도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경복궁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세계적인 K-관광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