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타이탄이 발사체 저장과 발사를 위한 지하시설인 사일로에 격납돼 있논모습.타이탄은 냉전 시절 핵보유국들이 서로 상대방 핵무기의 압도적인 파괴력과 상호확증파괴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쟁을 회피하는, '공포의 균형'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하다 냉전 뒤인 2005년 10월까지 퇴역했다. 타이탄은 후속 ICBM인 미니트맨 시리즈로 대체됐다.미국은 현재 지상기반 ICBM인 미니트맨--Ⅲ 450기를 몬태나, 콜로라도, 와이오밍, 사우스 다코다, 네브래스카 등 내륙지역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연장이나 별도의 대체조약 없이 지난 5일로 만료되면서 세계는 '핵무기 통제의 진공상태'를 맞았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핵탄두를 1550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AM), 전략폭격기 등 발사수단을 700개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2011년 발효됐는데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연장이 미뤄지다 15년 만에 대책 없이 일몰을 맞게 됐다. 뉴스타트의 전신에 해당하는 냉전 시대 감축조약부터 시작하면 50여 년 만에 핵무기에 대한 통제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만2241발의 핵탄두가 있다. 러시아가 5459발로 가장 많고, 미국이 5177발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밖에 중국이 약 600발, 프랑스가 290발, 영국이 225발을 보유 중이다. 서로 앙숙인 인도가 약 180발, 파키스탄이 약 170발을 경쟁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약 90발, 북한이 약 50발 등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는 냉전 시대에 이어 다시 한번 핵무기의 위협에 떨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으로선 미국과 러시아가 대체 조약을 마련할 때까지 뉴스타트를 존중하면서 핵 군비확장을 하지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하는 게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제일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도 선뜻 국제사회의 불안을 줄여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국제사회가 뉴스타트의 만료로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짚어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미니트맨-Ⅲ ICBM 발사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미니트맨-Ⅲ는 최고 사거리 1만3000㎞,최고 속도 마하 23에 120m의 원형공산오차(미사일, 포탄 등 발사무기의 50‰가 명중하는 원의 반경)로 목표물을 고속,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발사 직전에 시간을 들여 주입해야 하는 액체연료가 아닌, 미리 채워둬서 즉시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를 사용하므로 명령을 받고 이르면 1분 안에 신속 발사가 가능하다.미국은 현재 핵전력 현대화를 위해 미사일 유도와 항법장치, 추진체, 지휘통제 시스템을 모두 최첨단으로 바꾼 차세대 ICBM인 센티널을 개발 중이다. 미국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3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고성능 센티넬을 2029년 처음으로 인도받고 2035년까지 미니트맨-Ⅲ를 모두 대체할 계획이다./사진=로이터(뉴스1)

#왜 대책 없이 만료됐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다자조약을 고집하면서 연장을 미뤘고, 러시아는 1년 연장만 제안하면서 영국·프랑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양국 관계가 차가워진 것도 대책 없는 만료에 한몫했다.


뉴스타트가 만료되면서 세계 최다 핵탄두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핵무기와 투발 수단(Delivert System·핵탄두 등을 목표지점까지 보내는 운반수단) 관련 제약이 공백 상태가 됐다. 더욱 문제는 핵군비 통제에 필수적인 상호신뢰도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전 세계에 핵 불안이 가중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 유일의 핵통제 협정인 뉴스타트가 사라지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핵전력을 확산하는 상황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전 세계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도 남을 핵탄두를 보유한 것은 물론, 은밀하고 신속하게 상대로 기습할 수 있는 투발 수단을 다양하게 개발해놓고 있다. 이를 줄줄이 실전배치할 경우 분쟁을 억제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핵군비를 통제해온 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을 연장도 대체조약도 없이 종료하면서 전 세계가 ’통제 받지 않는 핵무기‘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5년 8월 15일 알래스카에서 만나는 장면. /사진=로이터(뉴스1)

#중국의 핵능력 강화를 통제할 수단은 없는가

이는 미국과 러시아 외의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통제할 수단도 만만치 않다. 미국 국방부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600여 발 수준인 핵탄두를 2030년까지 1000발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자국의 핵 반격 능력을 강화해 핵공격을 억제한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어 핵 군비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러시아나 미국 수준의 핵탄두와 투발수단 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전승절 열병식을 보면 중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 ICBM인 동펑-61(東風-61, DF-61)과 SLBM인 쥐랑-3(巨浪-3, JL-3)을 내보이는 등 핵전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 미국에 비해 핵무기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핵무기 감축이나 통제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통제를 회피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트의 만료를 맞은 미국도 핵 군비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매슈 크레이니그 부소장은 NHK에 "후속조약 체결이 현재로선 어렵다"며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2개의 핵 대국을 동시에 억지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핵전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자국 핵전력 확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 30일 경주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부산 김해공항 내 접견장인 나래마루에서 만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스타트 연장을 위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핵통제 체제를 만들어 시진핑 주석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핵무기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핵통제 체제 참여를 거부하고 있으며, 뉴스타트가 만료된 핵통제 진공 상태를 적극 활용해 탄두와 발사체 등 핵 전력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로이터(뉴스1)

#유럽은 무엇으로 러시아의 핵에 맞서 재무장할 것인가

가뜩이나 최근 그린란드 사태 등으로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안보 자강을 추진하던 유럽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유럽의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긴밀한 핵무기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서유럽의 비핵보유국들은 핵을 포함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첨단 장거리 정밀타격무기의 개발과 획득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정밀타격무기는 긴 사거리, 정확한 타격 능력과 살상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핵전력을 위협하면서 도발에 대응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임에도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핵전력을 억제하는 전략적 효력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선 이를 '전략적 비핵무기'로 부른다. 유럽은 이처럼 '전략적 비핵무기'로 불리는 정밀타격무기 개발로 재무장하면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SIPRI 보고서는 나토가 이러한 정밀 타격무기로 재무장을 진행할 경우 미래 핵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확산금지체제(NPT) 체제는 존속 가능할까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을 포함해 190개국이 가입한 핵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영향이다. 핵보유를 안보의 제1 과제로 삼겠다는 나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핵전력 군비경쟁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SIPRI는 성명에서 이번 뉴스타트 만료가 1968년 만들어진 NPT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방 동맹국 사이에서는 미국의 핵우산과 안보보장 제공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각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확보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자금력과 기술력, 그리고 의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상대가 핵무기를 확보해 위협하기 전에 자신을 지킬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 글로벌 담론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이미 핵개발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압박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이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이스라엘의 불안을 키워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부추길 수 있다. 핵무기 통제가 되지 않으면 크고 작은 국지전이 전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략 핵무기는 물론 전술 핵무기의 위협도 가중될 수 있다. SIPRI는 최근 자체 추산 결과 러시아는 1477기, 미국은 약 200기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지전에서도 핵무기가 위협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북한이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3단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 18호를 2023년 시험 발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더욱 우려되는 것이 북한이다. 뉴스타트 만료가 세계적인 핵군비 경쟁으로 이어지고 NPT 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경우 북한은 더욱 거칠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로 NPT체제를 비롯한 국제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아왔는데, 이제 그 해제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재진입 기술을 포함한 ICBM 기술의 완성을 추구하는 등 발사체 고도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하나의 발사체에 복수의 핵탄두를 장착시켜 여러 목표를 동시에 노리는 다탄두미사일(MIRB) 기술까지 손에 넣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함께 한반도 전역이나 일본 등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전력을 강화해 주변국을 위협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커질 수 있다.

#핵무기가 AI 오작동이나 사이버 공격을 겪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있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공지능(AI)과 사이버 공격이다. AI가 군사 분야를 비롯한 삶의 전 분야에 걸쳐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가 AI가 결합해 오작동하거나 사이버 공격을 받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