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정청래, 송영길, 김민석(왼쪽부터) 의원이 3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22대 후반기 국회 대비 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사진=뉴스1

6·3 지방선거 직전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민주화 이후 최고의 '패권세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22대 총선 압승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했고, 불법 비상계엄으로 자멸한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정권교체에 성공한 뒤 일방적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한때 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를 싹쓸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입법·행정·지방권력까지 모두 손에 쥔 민주당이 독주를 이어가고, 국민의힘은 만년 야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만 했다.

그러나 이런 전망에 고개를 젓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권력은 외부 공격보다 내부 분열로 몰락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과거 궤적을 돌아볼때 독점적 권력을 장악한 이 정권에서도 치명적 내분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 전개되는 양상은 이러한 예측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런 분열의 DNA는 역사적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직후,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빽바지(친노 신당파)'와 '난닝구(호남 사수파)'로 상징되는 극단적 대결이 당을 찢어놓았다. 내부 투쟁에 골몰했던 민주당은 결국 민심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민주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사상 유례없는 '전국 선거 3연속 참패'를 당하며 긴 암흑기로 들어갔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근 '친명(이재명)' 세력과 '친청(정청래)' 세력으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과거의 비극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다. 이들은 당의 주도권과 차기 대권 교두보를 차지하기 위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 등 외곽의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이 노선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은 세력 간의 전면전을 방불케 한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의 통합·확장 노선을 '재건축'에 비유하며, 핵심 지지층이 진정 원했던 것은 외연 확장이 아닌 '증축'이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친명계의 김민석·송영길 의원이 반발하며 양측은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제 민주당 의원들과 지지층은 이른바 '친명'과 '친청'이라는 두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섰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서로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멸칭을 퍼부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 진영 핵심 인물들의 이름을 악의적으로 합성한 정체불명의 멸칭들을 보고 있으면 20여년 전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 10년 전의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4년 전의 '수박 논란' 등이 차례로 오버랩된다. 표현의 겉포장만 바뀌었을 뿐, 권력을 향한 증오와 배제라는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급기야 이들의 싸움은 시대착오적인 적통 논쟁을 넘어, 과거 역사까지 헤집는 '파묘 소동'으로 치달았다. 노사모 시절 갈등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파동을 다시 꺼내 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여부라는 해묵은 논란까지 소환해 서로를 비난하는 형국이다.

정당이란 본래 다양한 생각과 정책이 역동적으로 공존하는 광장이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더라도 선택하는 방법론은 다를 수 있으며, 정치적 견해의 상반은 오히려 정당의 생명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독선에 빠지는 순간 정당은 무너진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동지를 토론과 설득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당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민주당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패배에 익숙한 무기력한 정당이었다. 과거 보수 진영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리멸렬한 내분을 일삼던 민주당의 무능함이 있었다. 민주당은 여러 차례 분열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민주당이 이대로 분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면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과거를 잊은 지금의 민주당은 분명 위기다.
박창억 동행미디어 시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