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국이 한·미 동맹과 군사적 부담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사진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미국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 규탄 및 파병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파병 요구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 등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압박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요없다"고 말을 바꾸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그러나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다시 입장을 뒤집어 파병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병이 불가피한 경우 고위험 해역으로의 전면적 진입은 부담이 큰 만큼 과거 영국, 프랑스처럼 임무와 전장의 범위를 좁히고 자체 지휘권을 유지하는 '제한적 파병'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 이곳(호르무즈해협)으로 함정을 보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올린 건 지난 14일(현지시각). 그러나 해당국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17일 SNS를 통해 "더 이상 나토 회원국의 (군사)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며 "일본·호주·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유럽 동맹국들의 파병 거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밝혔는데, 파병 요구를 거둬들인 게 진심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고난도 해상 작전의 딜레마

만약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한다면 2009년 창설 이래 17년 동안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우리 선박을 호송해 온 청해부대의 대조영함을 투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사진은 2019년 12월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만약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한다면 2009년 창설 이래 17년 동안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우리 선박을 호송해 온 청해부대의 대조영함을 투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현재 아덴만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동시킨다면 작전 반경이 크게 늘어나는 데다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홍해와 아덴만 일대 해역에서의 경계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작전 환경 역시 부담 요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수로가 좁고 수심이 얕아 공격에 취약한 구조다. 가장 좁은 구간의 폭은 약 34㎞에 불과하며 실제 선박이 항해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깊은 구간은 약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좁은 해협에서 대함 미사일이나 드론을 활용하는 이란군으로부터 느리게 운항하는 선박을 호위해야 하는 고난도 해상 작전이라는 점에서 파병 시 인명 피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지상군 파병과는 전장 환경 자체가 다르다. 조상근 카이스트(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 교수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현재 이란은 탄도·순항미사일은 물론 '샤헤드-136' 같은 자폭 드론을 집중적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소형 보트나 무인 수상정을 이용한 카미카제(자살)식 공격, 미사일 형태로 원격 살포되는 기뢰, 북한의 '해일' 같은 무인 잠수정 위협까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일 뿐 아니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무역법 301조 보복관세 등의 현안이 얽혀 있는 한국으로선 미국의 파병 요구를 전면 거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은 시대에 "한·미 관계에는 파병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중요한 만큼 대규모 전투병보다는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투 대신 호위"


한국의 주요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은 국익과 직결된 사안인데다 보복관세 가능성에 더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문제 등 주요 현안이 얽혀 있어 한국은 미국의 파병 요구를 전면 거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은 아르빌 재건 사업을 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 공병대대 장병들의 모습. /사진=나무위키 캡처


이 같은 여건을 고려할 때 비교적 안전한 해역에서의 후방 지원이 현실적인 파병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현재 상황은 우리가 전쟁의 주체로 개입하는 파병의 개념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상선을 보호하는 '군함 호위'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호르무즈 해협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외곽 길목에서 호위 임무를 수행하는 식으로 위험도를 낮추는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민 교수는 "또 국제적 연합체의 형태를 갖춰 들어가는 것이 이란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이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2019년에도 한국과 유럽은 이미 유사한 해법을 택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 안전을 명분으로 국제해양안보구상(IMSC)를 출범시키고 동맹국 참여를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정식 참여하는 대신 아덴만에 파견 중이던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외곽인 오만만 일대로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임무 역시 이란과의 군사적 대치가 아닌 한국 선박 보호로 한정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별도의 해양 감시 국제 연합인 '호르무즈 해협 유럽 해양 감시 임무'(EMASOH)를 출범시켰다. 해당 임무는 자국 상선 보호에 초점을 맞추며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의 직접적 군사 충돌을 피하는 데 방점을 뒀다.

미국의 파병 압박 속에서 전면적인 군사 개입을 피하면서도 동맹을 훼손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자위대 파병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육상자위대 약 600명이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배치됐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위대가 전투가 진행 중인 지역에 파견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다만 일본 헌법 제9조의 제약으로 자위대의 임무는 급수·의료·사회기반시설 복구 등 재건 지원에 한정됐고, 전투 행위는 금지됐다.

국제사회의 평가가 엇갈렸지만 이 파병은 미·일 동맹 강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미일 미사일방어(MD) 체계 공동 개발이 진전됐고 북핵 및 납북자 문제 등에서 일본의 입장이 반영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라크 전쟁 당시 한국 역시 비전투 임무 중심의 파병으로 리스크를 낮췄다. 부시 행정부가 동맹국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 기여를 요구한 가운데 노무현 정부는 여론의 반대와 북핵 위기,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맞물린 상황에서 2003년 파병을 결정했다. 다만 정부는 2004년 재건·지원 임무 중심의 '자이툰 부대'를 파견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그 결과 약 3600명 규모의 자이툰 부대는 공병·의료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했고 주둔지도 비교적 안정된 이라크 북부 아르빌로 제한했다.

방어 전력만 보낸 유럽, 전장 바꾼 캐나다…영리한 '우회 파병'

사진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가운데, 지난 12일(현지시각)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항에 칼리스토 유조선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모습. /로이터=뉴스1

호르무즈 해협과 유사한 해상 위기 상황의 대응 사례는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 '탱커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87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을 통해 유조선 호위에 나섰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나토 동맹국에 해군 함대 합류를 촉구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작전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자국의 독자적인 지휘권 아래 방어적 목적에 국한된 전력만 파견했다. 영국은 아르밀라 순찰대를, 프랑스는 프로메테 작전을 통해 주력 전투함(구축함)이 아닌 기뢰제거함(소해함) 위주로 전력을 보냈다. 이들의 임무는 교전 확대를 억제하면서 자국 선박을 보호하고 기뢰 제거로 항로 안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파병 대상이 반드시 미국이 지목한 곳일 필요도 없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동맹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자국 군대의 안전을 지켜낸 캐나다의 선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핵심 우방국인 캐나다의 이라크 침공 동참을 요청했다. 대미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로선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장 크레티앵 총리는 "유엔의 명시적 승인 없는 전쟁에는 참여할 수 없다"며 파병을 거부했다.

대신 캐나다는 이미 참여 중이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역할을 확대했다. 국제안보지원군 임무에 투입된 병력을 늘리고 치안 유지와 재건 지원에 더 깊이 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이 다른 전선에 전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이라크 전쟁에는 직접 발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동맹의 부담을 일정 부분 나눠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