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상장 건설사들이 올 하반기 개정 상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사회 개편에 나섰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7월 통과한 상법 개정에 따라 사내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는 안을 논의했다. 달라진 상법에 따라 내년부터 대주주의 영향력이 축소되며 상장사 지배구조의 분기점으로 부상했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날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정관을 수정했다. 독립이사 신규 선임도 논의한다.
현대건설은 정은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와 장화진 코히어 아태지역 총괄사장을 신규 선임하는 안을 다뤘다. 대우건설은 김보현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고 안성희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2023년 사내이사로 선임된 김 대표는 첫 연임에 성공했다. 회계 전문가인 안 교수는 내부 통제와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지배구조 안정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이날 주총에서 강민석 건축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구조설계팀장과 디지털전환 조직 DXT팀장을 지낸 강 본부장이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2022년 광주광역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후 이사회에 참여했던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사라진다.
CSO를 겸직했 조태제 전 부사장은 지난해 말 물러났다. CSO는 양승철 상무에게 이관됐다. CSO 직책은 사내이사 겸 대표이사 직급에서 부사장을 거쳐 상무급 미등기 임원으로 낮아졌다. 다만 안전 감사 기능은 이사회 사외이사가 유지한다. 2023년부터 이사회 산하 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한 최진희 사외이사는 감사위원회 위원 겸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전날 DL이앤씨는 주총에서 조홍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과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DL이앤씨는 서울지방국세청장 출신의 조 고문을 영입해 세무·법률 리스크를 선제 관리할 전망이다. 이 교수는 감사위원을 겸직해 인적자원을 활용, 인력 생산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방침이다.
GS건설은 지난 24일 올해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최현숙 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고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사내이사는 김태진 최고안전전략책임자(CSSO)를 선임했다. 허창수 회장과 허윤홍 사장 등 총수 일가 2명에서 김태진 CSSO까지 총 3명으로 사내이사가 늘어난다.
대주주 영향력 유지 안간힘…감사위원 선임
상장 건설사들이 사내이사를 늘리고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는 등 이사회 재편에 나선 배경에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이 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된다.이에 개정 상법의 취지를 반영하면서 대주주의 영향력도 최대한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기존에는 대주주가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이중에서 감사위원을 정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감사 기능과 이사회 진출의 문턱이 높아져 보다 독립적인 이사회가 설계된다. 올해 주총은 '경영권 방어'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감사위원회는 회계감사와 내부통제, 특수관계인 거래, 이사회 감시 기능을 포괄한다. 감사위원회 독립성을 강화하면 총수 일가나 경영진이 추진한 거래는 이전보다 더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주당 선임이사 수 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소수 주주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던 배제 조항을 삭제해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다.
주목할 대목은 이사회 내에서 법적 책임이 무거워진 점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주주'로 확대되며, 경영진은 주총 의사결정에서 총주주의 이익과 대우를 더 정교하게 따져야 한다.
기업들은 합병, 물적분할, 자사주 처분, 특수관계인 거래처럼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예상되는 안건의 절차적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회의록 작성, 외부 자문, 공정성 검토, 이해상충 관리가 과거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당국은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돼 이사회 구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3% 룰 강화는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할 강력한 내부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주주가 이사직을 독식하는 구조를 벗어나 이사회 내 감사 기능의 독립성이 강화돼 경영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