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8일 취임한 이재영 민주연구원장. /사진=민주연구원 제공

2013년 9월 러시아 노브고로드주에서 열린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 대표단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럽팀장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가 극동 개발 등을 위해 한국·일본·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늘리고 투자를 받으려면 무비자 협정부터 맺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두 달 뒤 푸틴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해 한·러 무비자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이 같은 구상을 직접 설명한 인물은 발다이 클럽의 한국인 최초 정회원인 이재영 민주연구원장이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수장에 오른 이 원장은 내로라하는 북방경제 전문가다. 1990년대 냉전의 잔흔이 남아 있던 시절 그는 한국 최초의 소련 교환연구원으로 러시아행을 택했다. 독학으로 익힌 러시아어를 바탕으로 모스크바국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된 뒤 2020년 더불어민주당 18호 영입 인재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정청래 민주당 대표로부터 "더 활력 있는 연구원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와 함께 민주연구원을 맡았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로 '동행미디어 시대'와 만난 이 원장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위기와 관련해 '북극항로 개척'과 '에너지 믹스'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중동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에너지 주권'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며 "한국은 정교한 에너지 믹스 전략, 공급망 다변화, 북방국가와의 관계 재설정,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포함한 국가 전략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 등에 대응한 에너지 운송망 다변화 방안으로 북극항로 진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러시아 북극항로가 당장 상업화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10년 정도를 내다보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6월 지방선거에 대해선 "이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에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도 늘 말씀하시듯 '먹사니즘', 즉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도록 집중한다면 무당층도 우리 쪽으로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2019년 러시아 국제회의에 참석해 외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재영 민주연구원장. /사진=이재영 민주연구원장 제공

-원장 취임 이후 역점을 둔 것은.
▶취임 후 모든 직원과 면담을 하고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뒤 3월 초부터 (조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주 장기적이진 않더라도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정책들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 내 전략기획을 강화했다. 인력이 31명 정도인데 모든 분야를 다루기는 힘들다. 대외 네트워크와 전문가들을 많이 활용하려고 한다. 정청래 대표가 글로벌 상황이 중요하다고 해서 '글로벌 정세 브리핑'도 하고 있다.

-6·3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판세를 어떻게 보나.
▶한국갤럽 기준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0%포인트(p)대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 같다. 수치보다 민심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변화하는 상황을 잘 읽어내고 따라야 한다. 실제 국민은 이념이나 진영보다 민생과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번 선거는 누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성과로 보여주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본다.

-최근 민주당과 정부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높아진다.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젊은 층이 실용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일자리나 주거 문제 등 청년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처럼 이념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기존에는 내로남불이나 불공정을 싫어하고 분노도 많았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적인 정책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외교·안보, 경제도 그렇고 사안별로 투명하게 많이 보여주니 각자 이해관계에 맞는 부분에서 (지지율이) 회복되는 느낌을 받는다.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놓은 정책 핵심 타깃은 누구인가.
▶지방선거에서 특정 계층만 겨냥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전반적으로 지역 주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에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청년, 중년층까지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지역은 수도권보다 더 어려움이 많다. 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삶의 불안을 느끼는 지역 주민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제안하고 연구해야 한다. 일자리, 주거, 돌봄, 교통 등 생활 인프라를 통해 '내가 여기서 살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정책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구 지역이 화제다. 6·3 지방선거 판세는 어떻게 보는지.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더 높았지만 결과는 졌다. 대구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최근 대구 민심이 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구 시민이 과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구·경북은 산업 구조도 크게 변화가 없고 인구는 감소한다. (대구 시민은) 정치권이 그동안 잘했는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런 이유로 김부겸 전 총리 같은 분에게 대구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자는 분위기가 높아진 것으로 본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 현실화할 경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충돌하는 것 아닌가.
▶현재까지 볼 때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실질 GDP(국내총생산)와 잠재 GDP 간 차이를 보면 지금은 오히려 물가 하락 압력이 조금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 목표를 2%로 보는데 3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2%대 초반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위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한 비상조치가 필요한데 지금이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적기라고 본다. 초과 세수로 10조원 이상을 더 걷었기 때문에 국채를 새로 많이 발행해 부채를 크게 늘리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는 마중물로 재정을 써야 한다. 추경이 신속하게 집행돼야 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고착되는 '하이플랫'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국이 이를 감당할 수 있나.
▶물가 하락 압력도 조금 나타나고 있어 추경으로 경제 성장률을 방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 체력이 이 정도는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26조원 넘는 긴급 추경을 신속하게 투입하고 최근 국회에서 환율 안정법도 통과됐다. 해외 투자자를 국내로 유인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간접 개입 수단도 생겼기 때문에 1500원대 정도는 견딜 만하다고 본다.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린다. 향후 에너지 안보를 위해 러시아 북극항로를 활용할 경우 한미동맹 균열의 위험은 없나.
▶한미 동맹은 중요하고 훼손돼서도 안된다. 한미 동맹과 유럽 등 우군들과의 협력 체제 속에서 우리의 에너지 외교도 다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다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한미 동맹과 상충하진 않는다. 북극항로 연안은 러시아가 가장 길지만, 지나가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된다.

-북극항로 진출은 러시아 협조가 필요한데 러우 전쟁 이후 경색된 한러 관계 어떻게 해결하나.
▶한국과 러시아 간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부터 해서 30여 년 동안 여야의 갈등 없이 잘 이어져 왔다. 윤석열 정부의 편향적인 진영외교를 제외하고는 서로 여야가 똑같이 생각했다. 북방정책 덕분에 대한민국 경제 영토가 많이 넓어졌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우리가 10대 경제대국에 올라오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미국의 제재도 있고, (한미) 동맹 문제도 있어서 당장 과거처럼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쟁 이후를 대비해서 한-러 협력을 재개하는 방법을 서서히 준비할 필요는 있다. 민간 차원에서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구상하는 정책이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찾은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방향에 국민 50%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민이 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며 옛날처럼 부동산 정책을 많이 낸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주 발표하기보다 같은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5극 3특 구상 완성을 위해 행정통합특별법이 추진되는데 주변부 공동화 문제에 관한 지적이 나온다.
▶우려에 충분히 공감한다. 초광역 거점이 커질수록 그 안에 시도 있고 군도 있다. 아직 정확하게 (행정통합특별법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앞으로 특별협약을 체결하고 특별계정을 만들어 시·군·구와 어떻게 연계하고 지원할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초광역으로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하나의 중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핵이 연결된 구조가 생길 수 있다. 권역 내에서 다핵 구조를 만들어 발전시키면 공동화 현상 우려는 기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청년 고용 문제도 심각하다. 노동 이중구조 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정규직과 단기 일자리가 많다. 그러면 청년이 꺼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공정한 노동시장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며 그 핵심은 동일노동-동일임금이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청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재영 민주연구원장 프로필
▲1964년 경남 양산 원동면 출생 ▲성도고 졸업 ▲한양대 경영학과 학사 ▲한양대 경영학 석사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 박사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럽팀장, 러시아·CIS팀장 ▲제10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더불어민주당 제18호 영입 인재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2020년 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회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오른쪽) 18호 영입인사인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왼쪽)에게 당헌당규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