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후티 반군 근거지인 수도 사나에서 지난 18일 지지자들이 후티의 홍해 지역 진격을 축하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녹색과 붉은 색 글씨의 플래카드에 '유일신은 위대하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후티의 4줄 구호가 아랍어로 적혀있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후티 반군의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으로 곤경에 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21세기 군사동맹 지형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로이터=뉴스1



함께 싸워줄 동맹이 많을수록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건 역사가 잘 말해준다. 고대 로마는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년~기원전 201년) 당시 숙적 카르타고(오늘날 북아프리카 튀니지 동북부 도시국가)의 한니발 장군이 본토를 공격해오자 가급적 많은 동맹을 끌어들이는 전술로 위기 탈출을 시도했다.

가장 큰 동맹은 가까이 있었다. 과거 정복됐으나 자치권을 얻고 군사지원과 납세 의무를 지던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부족인 소키이(socii:친구·동맹)였다. 150여 개의 소키이는 이 전쟁에서 로마 군단 전체보다 많은 병력을 제공해 로마의 승전을 도왔다.



로마는 전후 소키이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반란(기원전 91~기원전 88년)을 일으키자 일단 군사적으로 제압한 다음 소키 대부분에 시민권을 부여해 로마 공동체에 통합하는 길을 택했다. 한니발과의 전쟁으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동맹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던 것이다.

당시 로마는 카르타고 바로 서쪽(오늘날 알제리, 튀니지 서부, 리비아 서부)의 토착민 베르베르인의 왕국인 누미디아를 동맹으로 포섭하는 외교성과도 거뒀다. 지정학적으로 카르타고의 보급을 위협했고, 기동력이 강한 기병 전력도 확보했다. 누미디아 기병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최후 결전인 자마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로마는 이 승전으로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으며, 이는 약 200년 뒤 로마제국이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안정과 번영기를 누리게 된 결정적 디딤돌로 지목된다.

반면교사도 있다. 시칠리아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히에론 왕은 평화 시엔 중립 정책으로 통상 이익을, 전쟁 시엔 군사 강국 로마의 충실한 동맹이 되는 친로마 노선으로 생존을 꾀했다. '거래적 동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 히에로니무스는 카르타고의 회유에 넘어가 반로마 노선으로 바꿨다가 결국 멸망했다.



해묵은 역사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고대 로마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했던 미국이 최근 들어 제구실을 못 하는 징후가 조금씩 보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금액의 미국 무기를 수입해온 사우디가 최근 군사적 곤경에 처하자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그것이다.

사우디는 2014년부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예멘의 시아파 반정부 정치 그룹 안사룰라(Ansarullah: 유일신의 조력자라는 의미. 창설자 성을 따서 후티로 알려짐)와 싸워왔다. '신은 위대하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을 구호로 외치는 그룹이다. 그런 후티 반군은 지난 10일~11일 홍해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인 모카 항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페림 섬을 점령해 해협 통제권을 장악했다. 9월 중순부턴 수도 리야드 등 사우디 본토에 탄도미사일을 날리고 있다.

후티 반군이 장악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의 남쪽 입구다. 전 세계 해상교역량의 약 12%, 연 2만 대의 선박과 원유 등 약 16억 톤의 물자가 통과하는 핵심 교통로다. 유럽으로 향하는 한국 수출품과 한국에 오는 사우디 원유와 유럽 화물이 지나는 통로이기도 하다. 폭이 약 26~29㎞로 쉽게 틀어막을 수 있어 호르무즈 해협과 더불어 글로벌 교역의 초크 포인트(조임목)다. 이러한 바브엘만데브 해협 재탈환을 위한 군사 지원을 미국이 거절한 사례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생생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 이란의 2개 전쟁에 발목이 잡혀있어 사우디 지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내정치적으로는 군사동맹을 '공짜 안보'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행정부와 의회를 좌우하고 있다. 미국을 유일 동맹으로 두고 안보를 의존하기엔 불확실성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방어의 핵심인 한미동맹은 과연 유사시에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동맹의 핵심은 연합훈련과, 무기체계 거래, 그리고 군사정보 공유를 통한 공동의 군사·가치 목표 추구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월 16일 한미 연합연습인 '자유의 방패'가 트럼프의 일방적인 지시로 축소됐다. 돈이 많이 들고 (자신이 김정은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북한에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보 공유, 특히 대북 정보에 스위스 치즈 같은 구멍이 보인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미동맹이 '가치와 공동목표' 중심에서 점차 트럼프의 용어인 '거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미국만이 동맹인 상황'이 과연 시대에 맞는지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미국 올인'을 '다층적 동맹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 한미동맹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유지·관리하되, 다른 우방들과도 격자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러 겹으로 이뤄진 동맹의 층을 쌓자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주목할 만한 사례도 있다. '중국의 역내 패권 저지'라는 공동목표 아래 미·일 동맹에 무게를 두면서도 다양한 국가와 다층적 안보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일본이다. 일본은 정식 군대가 아닌 자위대만 있음에도 중국 위협 앞에 안보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다층적 동맹 네트워크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호주(2022년 1월)·영국(2023년 1월)·필리핀(2024년 7월)과 각각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했다. 상호 파병과 원활한 부대 이동을 허용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군사협정이다. 미군을 통하지 않고 각국 간의 직접적인 연합훈련·정보제공·군사협력이 가능하다.
일본은 2024년 미국 워싱턴에서 출범한 미·일·필리핀 3국 협의체와 2007년 결성된 쿼드(미·일·인도·호주가 정상회담·정보교환·군사훈련 등 소다자 협력(Minilateral Cooperation)을 하는 기구)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안보를 위한 다층 군사동맹 네트워크 강화의 과정이다.

한국도 이제 다층 군사동맹망 확충으로 국민을 지킬 안보의 철갑을 이중삼중 두를 필요가 있다. 나토와 협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한국과 함께 '나토정상회의 초청대상이던 아태국가(AP4)'인 호주·뉴질랜드·일본 등과 지역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과의 방산협력국가인 폴란드·노르웨이·스페인·아랍에미리트(UAE)·필리핀·페루·크로아티아 등과 군사협력까지 관계 확장을 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의 국제 안보협력 확대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