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대화하는 구윤철 당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과 이형일 재경부 1차관. '8.30 개각'으로 구 부총리가 물러나고 이 신임 부총리가 이달 22일 임기를 시작했다. / 사진=뉴스1



'8·30 개각 파동' 와중에 조용히 물러난 구윤철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후임 이형일 부총리는 '닮상 다관왕'이란 공통점이 있다. 재경부 노동조합이 2004년부터 선정해온 '닮고 싶은 상사(닮상)'는 과장급 이하 직원들이 본받을 만한 선배 관료를 투표로 뽑는 제도다.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최고 엘리트 관료조직의 후배들로부터 리더십, 업무능력, 인격을 두루 공인받은 것이란 점에서 '닮상' 수상자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3회 선정되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르는데, 구 전 부총리와 이 부총리는 둘 다 3관왕으로 '헌액'된 인물들이다.

부드러운 성품과 원만한 소통이 장점으로 꼽히는 구 전 부총리는 관료 생활의 정점에 오른 지난해 예전과 정반대 평가를 받았다. 닮상과 함께 투표하는 '안닮상(안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된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큰 이유였을 거다. 경기지사 시절 자신의 기본소득 주장에 반대하는 기재부를 향해 "이 나라는 기재부가 아닌 국민의 나라"라고 했던 게 이 대통령이다. 최강의 정책 수단인 예산권을 신생 기획예산처에 내준 수장에 대한 후배들의 눈길이 고왔을 리 없다.



구 전 부총리가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작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구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가 25%에서 24%로 낮춘 법인세 최고세율을 다시 높이란 여당 요구에 "종합적으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발하는 야당엔 "법인세가 100조 원에서 거의 60조 원으로 40%나 빠졌다. 그냥 감세를 해준다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라고 맞섰다. '법인세를 내려도 투자가 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정치권의 세율인상 요구에 적극 동조하는 경제부총리는 처음 봤다'는 말이 안팎에서 나왔다.

2024년 62조5000억 원까지 줄었던 법인세수는 지난해 84조6000억 원으로 늘고 올해 100조 원, 내년엔 2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의 법인세수는 세율 '1%포인트'가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경기에 달렸던 것이다. 반년도 안돼 급변할 세수를 잘못 예측해 법인세율을 높이는 바람에 '예산통' 구 전 부총리의 세금, 재정에 대한 이해도에 의문이 제기됐다.

첫 단추를 이렇게 꿴 구 전 부총리는 '청와대 경제 브레인' 김용범 전 대통령 정책실장 등에 가려 임기 내내 존재감이 희미했다. '비거주 1주택' 보유세 부담을 높인 '8·3 세제 개편안'을 내놓기 전까지 그랬다. "제 집 놔두고 세 사는 이유가 백만 가지는 될 텐데, 현실을 외면하고 투기세력으로 본다"는 비판이 쏟아지며 세제안을 짠 재경부에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는데, 그게 부총리 교체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지난달 1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구 전 부총리에게 건넨 말은 내상을 더 키웠다. "세금 만지는 사람은 (세제를) 바꾸면 욕을 먹게 돼 있다. 혜택 보는 쪽은 가만히 있고, 부담이 늘어나는 쪽은 엄청나게 반감을 가지게 돼 있으니 무조건 기어서 다니시라"는 대통령의 '농담'에 구 부총리는 따라 웃었다. 올해 1월부터 이 대통령이 직접 드라이브를 건 '비거주 1주택자 중과세'는 세제 원칙과 실무에 정통한 재경부 관료들 머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아이디어다.

취임식도 없이 이달 22일 임기를 시작한 이 부총리도 비슷한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재경부 1차관으로 세제 개편안을 주도한 게 이 부총리다. 인사청문회에선 17년 보유한 과천 아파트 실거주 기간이 4개월뿐인 '비거주 1주택자'란 점이 문제가 됐다. 세종시 근무, 해외파견 등을 고려할 때 예전이라면 큰 흠이 될 일이 아닌데, 상부 방침에 맞춰 본인도 못 지킬 제도를 만드는 바람에 제 발등을 찍었다. 여론을 의식한 여당의 대폭 수정 요구에도 "거주 중심 주택문화로 간다는 취지"는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달 초 추석물가 집중관리를 주문하며 "이번엔 자신 있습니까? 재경부 장관 지명을 취소할 수도 있는데"라며 '과한 농담'을 던졌을 때엔 "확실히 잡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닮상'에 표를 던진 후배들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을 것 같다.

직장에서 이뤄지는 '상향 평가'가 대부분 그렇듯 재경부 '닮상'도 성격이 유순하고, 후배에게 호통치는 일 없는 '착한 상사'가 후한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다. 평상시라면 장점인 이런 원만함이 정치, 사회적 난맥이 심한 시절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경제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안팎의 무리한 요구에 원칙과 소신으로 맞서 굵직한 업적을 남긴 경제부총리들이 강단 있고, 때로는 독한 캐릭터 소유자들이었던 데엔 이유가 있다.

지난달 30일 아침,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려다 개각 소식을 듣고 당황해 해외 일정을 취소했다 번복하고 비행기를 탄 게 국민들 기억에 오래 남을 구 전 부총리의 마지막 모습이다. 세계 10위권 대국의 '경제 컨트롤 타워'가 개각 장기판의 졸(卒)처럼 초라하게 퇴장했다. 착한 관료가 성공한 부총리로 남기 참 어려운 시대다.

박중현 동행미디어 시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