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1월15일,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아프리카 앙골라 우암보의 지뢰밭에 들어섰다. 방호 조끼와 안면 보호구를 착용한 그는 지뢰 제거 단체 헤일로트러스트가 확보한 안전 통로를 따라 걸었다. 전쟁이 끝나도 땅속에 남아 민간인을 해치는 대인지뢰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해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2개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대인지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29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수색로 개척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군 간부 2명이 중상, 1명이 경상을 입었다. 합동참모본부는 폭발물을 북한군이 매설한 '수지 반보병 지뢰'로 추정하고 있다.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 약 10m다.
지뢰는 공격 대상에 따라 전차 등을 노리는 대전차지뢰와 사람을 노리는 대인지뢰로 나뉜다. 대전차지뢰는 수백㎏ 이상의 무게가 실려야 터지도록 설계돼 사람이 밟아도 대개 폭발하지 않지만 대인지뢰는 사람의 무게 정도의 압력에도 폭발한다. 대인지뢰에는 밟는 순간 폭발 압력으로 다리에 치명상을 입히는 폭풍형과 쇠구슬, 금속 파편 등을 사방으로 흩뿌려 주변 여러명을 살상하는 파편형 등이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대인지뢰가 국제인도법의 기본 원칙인 구별 원칙과 불필요한 고통 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비인도적 무기'라고 규정한다.
30년 만에 흔들리는 '지뢰 없는 세계'

대인지뢰를 없애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최근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에스토니아·핀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오타와협약에서 탈퇴했고 우크라이나도 협약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166개국이던 협약 당사국은 현재 162개국으로 줄었다.
지뢰가 널리 퍼진 것은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1994년 보고서에서 대인지뢰 한발이 당시 최소 3달러 수준에 거래될 수 있다고 했다. 신승기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시대]에 "전쟁이 계속 일어나면서 많은 나라들이 지뢰의 필요성을 다시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지뢰는 가성비가 좋은 무기다. 국력이 강하거나 기술력이 뛰어난 나라가 아닌 이상 효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반도,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지뢰밭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촘촘히 묻힌 곳으로 꼽힌다. 2016년 합참 자료로 알려진 추정치에 따르면 DMZ와 민간인통제선 일대에 남측 약 127만 개, 북측 약 80만 개 등 모두 200만 개가량의 지뢰가 매설돼 있다. 군은 전방 공병대대를 모두 투입해도 제거에 20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여기에 북한은 최근 지뢰 매설을 더 늘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겸 한국핵안보전략포럼 대표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에 따라 MDL의 국경화를 추진하는 만큼 남측 접근을 막기 위한 지뢰 매설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 간 지뢰 제거 합의가 없다면 비슷한 사고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뢰 제거에도 무인화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미국 기업 세이프프로의 AI 소프트웨어는 상용 드론이 찍은 영상에서 150종 넘는 지뢰와 불발탄을 식별한다. 헤일로트러스트도 드론·위성 영상과 현장 데이터를 AI 학습에 쓰고 있다. 찾아낸 지뢰는 원격 조종 드론이나 로봇이 소량의 폭약으로 무력화한다.
한국군도 지뢰 제거 무인화에 나섰지만 속도는 더디다. 국내 최초의 무인·원격 지뢰제거 장비인 'MV4'는 크로아티아 DOK-ING사가 만든 수입 장비다. 쇠사슬이 달린 도리깨를 고속 회전시켜 땅속 30㎝까지 묻힌 지뢰를 폭파하는 방식이다. 현대로템도 K600 장애물개척전차를 최대 5㎞ 밖에서 조종하는 무인원격조정장치를 자체 연구과제로 개발해 왔지만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헤일로트러스트 같은 민간단체가 지뢰 탐지·제거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지뢰제거 전문업체가 없다.
조상근 카이스트 국가미래전략기술정책연구소 교수는 "2013~2014년 유엔 레바논평화유지군(UNIFIL)에 파병됐을 당시에도 사람이 직접 지뢰를 찾았지만, 지금은 제거 작업에 무인 장비가 투입된다"며 "해외에서는 15년 전부터 지뢰 제거에 무인체계를 활용해 왔는데 우리 군은 여러 이유로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드론이 먼저, 사람은 나중에

전문가들은 사람이 위험지역에 먼저 들어가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드론과 로봇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지뢰 제거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상근 교수는 "드론이 먼저 지뢰 의심 지역을 살피고 지상무인차량(UGV)이 위험 구역에 들어가 통로를 개척한 뒤 사람이 투입되는 유·무인 복합 방식이 시급하다"며 "유엔사와의 협의 등 제약이 있지만 우리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적 대응과 함께 DMZ 관리체계도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성장 부소장은 "정전 73년째인 만큼 비무장지대와 MDL을 남북 양측이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남북 간 직접 협의가 어렵다면 남북미중 4자 대화 등 다자 협의를 통해 MDL 일대의 갈등을 줄일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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