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은 명확하다.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더 높다는 인식 말이다. 지난해 9월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 특별재판부' 위헌 논란을 두고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이런 논리를 폈다.

"모든 것은 국민 뜻에 달려있다. 국민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이다.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으로부터 2차적으로 권력을 나눠 받은 거다. 대한민국에는 권력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이다.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이어) 간접 선출 권력."



'권력서열론' 관점에서 보면 청와대가 대법관 제청을 두고 조희대 대법원장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이 국민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선출 권력의 임명권을 무시하는 태도는 최상위 권력의 눈엔 '내란적 성격'(김민석 민주당 대표의 표현)으로 비칠 만하다. 그러니 타협할 수 없는 거다.

청와대가 지난 8월 사전 협의 없이 조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하자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뒷받침하는 권한"이라고 비판한 것도,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을 거부하자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라고 반격한 것도 '권력서열론'을 빼곤 설명이 어렵다.

최상위 권력 의식은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유가 (청와대 문서에) 적혀 있지 않다"고 했을 때 나온 청와대 반응에서 정점에 이른다. 조 대법원장은 자신이 추천한 손봉기 판사가 왜 대법관으로 부적절한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말한 건데, 청와대는 "국민이 다 아는 반려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모르겠다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쏘아붙였다. 손 판사가 대법관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아는 국민이 정말 있단 말인가? 청와대의 답변은 "내가 싫다잖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출 권력은 임명 권력보다 민주적 정당성이 크다. 그러나 정당성의 크기를 비교해 작은 쪽이 큰 쪽을 따라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권력서열론은 헌법 어디에도 없는 개념일뿐더러 헌법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주의 헌법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수직 관계에선 성립 자체가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서열론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견제와 균형, 이게 삼권분립의 핵심 가치"라고. 견제와 균형이 상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을 봤는가? 오로지 각각의 권력이 병렬 구조 속에서만 견제할 수 있고, 그것이 균형을 이룰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더욱이 사법권이나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이 나눠준 게 아니다. 헌법이 직접 부여한 권한이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후순위 권력이 아니라, 여론의 흐름에 휘둘리지 말라고 일부러 선거로 뽑지 않는 권력이다.

물론 민주적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법부가 선출 권력에 어디까지 맞설 수 있느냐는 오랜 논쟁거리다. 사법부도 그 한계를 겸허히 인식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장을 대통령의 '하위 기관'으로 전제하는 한 대법관 재제청 사태는 현행 헌법상 풀 수 없는 난제가 된다.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은 청와대가 손 판사 제청을 거부한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 만약 다른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왜 그 판사여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런 뒤에 판단은 국민과 대법원장의 몫이다.

다시 대통령 얘기로 돌아가 보자. '모든 것은 국민 뜻에 달려있다. 국민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선출 권력이다.' 국민 다수가 선택했다는 게 국정의 백지위임은 아니다. 선출 권력이 국민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국민을 설득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다할 때 '모든 것은 국민 뜻에 달려 있다'고 말할 자격도 생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