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지주들이 연말 은행장 인선을 앞두고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등 이사회의 권한을 넓히는 쪽으로 인사 절차를 손질하고 있다.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기댄 인사를 막으라는 당국의 주문에 따른 변화다. 지주가 추린 은행장 후보를 은행 임추위가 심의하던 구조가 후보 발굴 단계부터 은행 임추위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KB금융은 30일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추천 위원회(대추위)를 열고 은행장 등의 후보 선정 기준을 논의했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 등 6개 주요 관계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장의 경영 승계 절차를 각각 시작했다. 앞서 신한금융은 지난 21일 12개 자회사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장의 임기는 모두 올해 말 만료된다.
이번 인선 과정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은 은행 이사회 내부 위원회인 임추위의 권한이 대폭 커졌다는 점이다. 신한금융은 올해부터 은행 임추위에 후보군에 포함할 인사를 추천할 권한을 부여했다. 자회사별 CEO 자격요건과 세부 평가기준도 구체화하기로 했다.
하나금융은 올해부터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후보 대상자 추천 단계를 넘어 최종 후보군(Short List)에 대한 의견 개진으로까지 넓혔다. 압축 과정을 거쳐 선정한 최종 후보군을 은행 임추위와 공유하고, 최종 후보자를 정하는 평가 과정에는 은행 임추위원장이 대표로 이사회에 참석해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
우리금융은 은행 임추위에 경영성과 점검 절차를 신설하고 외부 전문기관도 참여시킨다. 내부 검토뿐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경영성과를 다각도로 검증하도록 했다. 주요 단계별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마련해 CEO 선임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금융지주들이 비슷한 시기에 절차를 손보는 것은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맞닿아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5일 금융지주의 자회사 CEO 선정 절차가 엄격하지 않고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CEO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거나 후보 압축 단계별 최소 검증기간을 두지 않은 점, 은행 임추위에 추천권을 준 금융지주가 일부에 그친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이 원장은 지난 23일 8대 은행지주 회장과의 조찬간담회에서도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하는 절차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주가 관리하는 상시 후보군 정보를 자회사 임추위에 충분히 제공하고, 후보 평가 과정에 임추위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장직과 은행장직을 번갈아 맡으며 10~20년간 영향력을 유지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2023년 12월 승계 개시 시점을 앞당기고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도록 하는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마련했다. 준수는 금융사 자율에 맡겼다. 이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발언 후 금융위와 금감원은 올해 1월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출범시켰다. CEO 선임·승계 절차와 이사회 독립성, 성과보수 체계가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 제도 개편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3월까지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으나 일정이 여러 차례 밀렸고 9월이 다 지나갔음에도 아직 발표 시점을 정하지 못했다.
이번 인선은 금융지주들이 당국의 주문을 실제 절차에 얼마나 반영했는지를 보여주는 첫 시험대가 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대폭 개선된 절차를 기반으로 경영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대표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은행 임추위와 긴밀히 소통하는 한편, 역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각 업권을 이끌 최적의 리더를 각사 임추위에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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