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자 여권이 '대권설'을 제기하며 공세에 나섰다. 대통령과의 충돌을 사법부 독립을 위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야심에 따른 행보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의 대응 명분을 약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오히려 그를 보수 진영의 대안으로 부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 대법원장이 "국정감사를 통해 이야기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검찰총장 윤석열처럼 조 대법원장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고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조 대법원장의 '서초동 정치'다. 지금 사법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의겸 의원도 지난달 27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에 정치적 야심이 담긴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른바 '난가병', 다음 대통령은 나인가? 난가병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갈등은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이견에서 비롯됐다. 조 대법원장은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했지만 청와대는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22일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가 없다며 거부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두는 인식이라고 반박했다.
여권의 대권설 공세는 이 같은 권한 논쟁의 초점을 조 대법원장 개인의 정치적 의도로 옮기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제청 거부를 정치권 진출을 위한 행보로 인식시키면 조 대법원장이 내세우는 사법부 독립의 명분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법원 소속 부장판사는 [시대]에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지목해 요청하는 방식 자체가 이례적인 만큼 대법원장도 사법부 독립을 내세울 명분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충돌을 줄일 여지도 있었지만 강경한 대응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려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법관들도 조 대법원장의 대응에 힘을 싣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여권은 이런 공세를 통해 조 대법원장의 명분을 약화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절대로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정치를 하려고 한다는 것은 여권의 논리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갈등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청와대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오랜 친분 등을 근거로 향후 국민의힘 영입 가능성까지 의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 대법원장은 최 전 원장과 서울대 법대와 사법연수원 13기 동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임명됐지만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를 거치며 정부와 대립했고 이후 야권 대선 주자 부상했다. 2021년 6월 임기를 마치기 전 감사원장직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선 경선에 참여했다.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재제청 행위에 대해서는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밖에 판단이 안 된다"며 "정치에 들어와 본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게 아닌가. 대권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여권의 공세가 오히려 조 대법원장의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통령과 맞서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될수록 보수 진영의 관심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에 대해 "정치인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며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행동할 가능성이 큰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로 조 대법원장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말이 법원 내부에서 돈다"며 "대통령에게 굴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킨 인물로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고 귀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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